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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 중국’ 한반도엔 악몽?

중국이 융성한 통일제국일 때 한반도 역사적 안정. ‘중화주의’ 과할 땐 재앙…미국 치우친 ‘제2 중화주의’ 경계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1, 2
이삼성 지음/한길사·1권 3만원, 2권 3만3000원


중원이 강대해지면 한반도가 위험할까?
» 중국이 초대국이 되면 중화체제가 복원되고 한반도는 조공국 처지가 될까?

고속성장 중인 중국이 조만간 제국적 중화체제를 확립하면 한반도를 삼킬 것이라는 ‘중국위협론’이 우리 사회에서 고개를 쳐들고 있다. 지난 역사에서 그런 일이 되풀이돼왔다는 그럴듯한 얘기와 함께. 거대 중국의 등장은 과연 우리에게 악몽인가? 이삼성(51) 한림대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얘기한다. 오랜만에 낸 또 하나의 역작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한길사)에서 이 교수는 역사적으로 한반도에 재앙이 덮친 것은 중국 중원이 강성해졌을 때가 아니라 오히려 중화체제가 약화되거나 붕괴했을 때였다고 말한다.

이런 주장은 미국이 중원 노릇을 하고 있는 현대판 중화체제가 지배하는 지금 한반도와 그 주변 정세에 중대한 함의를 갖는다. 이 교수에 따르면 이 문제는 21세기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백년대계의 대전략”, “한국이 동아시아에서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확보할 백년대계의 전략적 패러다임”을 수립하기 위해 반드시 짚어봐야 할 중대사안이다.

“고려는 417년 동안 1.09년에 한 번꼴로 침략을 받았고, 조선왕조 519년 동안엔 1.44년에 한 번꼴로 침략을 당했다고 한다. 이 피침은 거의 대부분 중국과 일본에 의한 것이었다.”(김경민, <조선일보> 2004년 5월19일) 수치의 근거부터 따져봐야겠지만, 한반도가 잦은 외침에 시달려온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의 기억에 남을 정도로 중대한 외부침략은 대부분 ‘중국’이 아니라 중국을 위협하거나 중원을 해체한 이민족, 특히 한반도 북쪽 유목민(노마드) 또는 유목-농경민들이었다. 적어도 신라 통일 이후 지금까지 1200여년 동안은 그랬다. 1627년 정묘호란, 1637년 병자호란은 중국이 아니라 중화체제를 무너뜨린 만주족(후금. 1636년 청이 됨)의 침략이었고, 10세기 고려를 침입한 것도 중국이 아니라 북방 거란족(요)이었다. 13세기 고려를 휩쓴 것도 중원을 무너뜨린 몽골군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중원을 차지하고 중화체제를 재건했지만 그 이후에는 한반도를 침탈하지 않았다. 그 밖에도 크고 작은 침입들이 많았지만 그것은 대부분 중국으로 통칭될 수 없는, 오히려 중국을 위협하거나 멸망시킨 변방세력이었고, 그들이 중원을 위협했을 때의 중화체제는 약화됐거나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 한반도가 일제 식민지가 된 것도 1840년 아편전쟁으로 청의 중화체제가 무너진 뒤였다. 임진왜란도 중원의 약화와 상관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명의 몰락에는 조선 지원전쟁이 한몫했다.

“한반도가 침탈의 대상이 된 역사적 조건은 중국 중원 중앙정부의 힘의 함수가 아니라 중화세력과 내륙 아시아권(몽골, 만주, 요동 등)의 북방민족들이라는 다행위자들 간의 역학 함수였다”는 게 이 교수 생각이다. 중화체제의 근간은 조공·책봉 관계였다. 이 교수는 유럽은 내부에선 대등한 국제관계를 형성했으나 비서구 사회는 식민지배하며 철저하게 약탈하고 착취했다며, 그런 서구적 개념으로는 중원 중심의 국제관계라는 독특한 ‘제3의 질서’를 창출한 동아시아 조공·책봉 관계를 이해하긴 어렵다고 지적한다. 공식적으로는 위계적으로 중원에 복속돼 있던 조공국들은 실은 내치와 외교 모두 내재적 자율성이 존중되는 독립적 정치체들이었다. 한반도는 조공·책봉 관계가 불안정하고 일시적이었던 북방민족, 그 관계에서 제외돼 있던 일본 등과도 다른 독특한 중화질서의 핵심 담당자였다. 공식적 주종관계를 유지했으나 중원과 한반도는 일종의 중화질서 연합체제와 같은 관계를 맺었다. 한반도가 침략당한 건 주로 중원이 약해지고 만주 등에 제3의 세력이 등장해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삼각구도가 만들어졌을 때였다.

따라서 북방 침략들을 ‘하나의 중국’으로 뭉뚱그려 중국이 강해지면 한반도가 위험해진다는 단순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안정된 중화체제는 우리에게 장기적 안전을 보장해주는가? 역사를 돌아보면, 위계적 ‘안보레짐’으로서의 강대한 중화체제가 들어서고 한반도가 거기에 지나치게 의존할 때, 말하자면 중화질서에 대한 ‘과잉적응’, 한반도(특히 특권적 지배층, 기득권층)의 문화적·이념적 중국화가 정도를 넘었을 때도 재앙을 불렀다. 안정적 중화체제는 한반도의 장기적 평화를 보장해준 기반의 하나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소중화주의’로까지 나아갔던 바로 그 과잉적응 때문에 중원 외의 세력들을 타자화하고 주변에서 새로 등장하는 세력들을 깔보고 무시함으로써 정세 변화에 둔감한 청맹과니들을 양산해 결국 위기를 자초했다. 인조의 삼전도 굴욕과 북학파 박지원의 탄식, 그리고 일제에 나라까지 빼앗긴 수모와 비참이 만주와 일본, 유럽 등 바깥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을 감고 오로지 중원만 쳐다본 소중화의식의 귀결이 아니었던가. 두 얼굴의 중화체제를 바로 보자!

하지만 얘기를 여기서 끝내서는 안 된다. 정작 지은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런 것이다.

중국위협론은 냉전 붕괴 뒤 중국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하는 것을 허용치 않으려는 미국 신보수주의자(네오콘)들을 비롯한 보수우파세력이 지어내고 일본과 한국 내 친미우파가 동조하는 허구적 이데올로기다. 지난 2천년 동안 중국이 한반도 침략을 주도했다는 ‘낭설’은 이런 이데올로기가 야기한 잘못된 ‘기억의 정치’ 현상 때문이다. 이는 현대판 중화체제라 할 미국의 제국적 패권이 보장해준 기득권을 지켜준다. 미국 정책을 비판하기만 해도 ‘반미’로 몰고, ‘용미’로 정당화하지만 실은 무조건적 친미만 허용되는, 비판적 사유와 대안 탐구의 틈새조차 위험시하는 ‘한-미 동맹’의 이데올로기화, 즉 현대판 소중화의식에 찌든 기득권층은 한반도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세 변동을 무시하거나 거기에 대해 무지하다. 이래서는 중국이 새로 서고 북한이 바뀌고 러시아와 베트남, 인도가 다시 떠오르는, 명말청초와 개화기처럼 급속히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주변 정세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백년대계의 대전략을 세울 수 없다. 게다가 분단상황에서 분단체제의 창안자요 유지자인 미국판 중화질서에의 과잉의존은 더더욱 위험하다.어떻게 할 것인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 지은이와 함께 / 이삼성 교수
“중국 한반도 위협론은 네오콘 논리…균형외교 절실”
 


이삼성 교수


“요령부득의 ‘전략동맹’이라는 이름으로 한-미 동맹 강화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이명박 정부는 물론이고,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한 배경에도 ‘중국이 강해지면 한반도가 위험해진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미국 네오콘들이 자가발전한 관념을 그대로 수입해서 약간 가공해서 써먹고 있다. 그래서는 아시아적 전망이 제대로 들어설 여지가 없다. 학계도 다를 바 없다.”

경기도 남양주 산골에 집을 짓고 1주일에 2~3차례 학교에 출근하는 일 빼고는 공부에 몰두해온 미국외교와 현대 국제정치 분야의 탁월한 연구자 이삼성 교수. “지금까지 인문학적 견지에서 진행된 동아시아 연구는 많았지만 국제관계학과 역사학적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전쟁과 평화의 비전을 전략적으로 사유한 사례는 거의 없었다. 한-미 동맹과 중국위협론만 횡행하는 가운데 아무런 문제의식조차 없었다는 게 바로 문제다.”

그는 “특정국과의 동맹 체제에 전적으로 의존해선 안 된다”며 미국이 주도하는 21세기판 중화질서에 올인해온 중독증세에서 벗어난 “균형외교”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지배세력, 기득권층은 특권 유지와 생존을 위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외세를 끌어들이고 그들과 연합해서 더욱 지배체제를 강화하려 드는데 그렇게 해서는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란다. 고종이나 명성황후(민비), 또는 개화파식 외세 끌어들이기가 그런 것인데, 이 교수는 그것은 균형과는 다른 ‘균세’라며 구분했다.

책은 19세기까지 2천년간의 동아시아 전쟁과 평화 문제를 다룬 1권과 19세기를 탐구한 2권, 그리고 아직 나오진 않았지만 20~21세기를 다룰 3권(10월 출간 예정) 등 3권으로 기획됐고, 각권 모두 600~800쪽을 훌쩍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1권에선 “국내 학계와 지식계가 의도적으로 배척해온 민족 개념의 합리적, 이성적 복원”에 주안점을 뒀다. 뉴라이트 쪽은 민족주의와 정체성 의식단위로서의 민족을 혼동하는 등 무리한 논리 전개를 일삼고 있다는 게 이 교수 생각이다. 그는 우리와는 역사적 배경이 다른 서구와 일본 쪽의 근대 민족주의 담론을 수입해 지난 10여년간 민족 개념 해체작업을 벌여온 식민지근대화론도 비판하지만, 고종을 개명군주로 보는 근왕주의적 자력근대화론에도 찬성하지 않는다. 2권에선 제국주의가 지배했던 19세기 동아시아 역사의 체계적인 시대 구분 작업을 시도했고, 그동안 ‘탈제국주의’ 세력의 선한 얼굴로 다가온 미국을 동아시아를 침탈한 제국주의 카르텔의 핵심 세력으로 재규정했다. 또 1840~1910년 시기를 ‘말기조선’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파악하고 세밀하게 시대를 구분해 시기별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점검하는 작업도 벌였다. “이제까지 그런 시도는 없었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19세기를 얘기하지만 체계적인 분석 없이 사건이나 사안별로만 얘기하는 게 답답하다.” 그래서 방대한 사례를 학습하고 정리한 책 3권 모두가 좀더 열린 전망을 얻기 위한 토론의 재료가 되기를 그는 바란다.

제3권은 일본의 동아시아 지배를 문명사적으로 정당화하며 폐기해버린 파시즘 비판을 복원하고 일본 지배의 고통스런 내면과 태평양전쟁, 한국전쟁을 살피면서 냉전질서로 환원할 수 없는 전후 질서를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라는 개념으로 고찰할 예정이다.

글 한승동 선임기자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출처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5398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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