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어서 본 반민특위 재판기록〉
지워진 친일파, 다시 역사법정에 〈풀어서 본 반민특위 재판기록〉
“세상엔 ‘감추고자 하는 자’와 ‘밝히고자 하는 자’가 있다.” 이 얘기는 어떤 사안에도 적용되겠지만, 특히 한국에서 친일파 문제와 관련해서 매우 적확한 말이다. 해방공간에서 친일파를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반민특위’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반민특위는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로 제헌의회에서 결성됐지만, ‘친일파 청산’에 실패한다. ‘감추고자 하는 자’들의 저항이 거셌기 때문이다. 더욱이 반민특위가 조사·재판했던 친일인사 688명에 대한 기록은 대검찰청에 이관·보존됐어야 했는데도 대부분 유실됐다.
하지만 ‘밝히고자 하는 자’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이미 권력의 핵심부를 장악한 ‘친일파’에 의해, 사회적 금기가 돼버리다시피 한 ‘친일파’란 말을 다시 사회에 불러내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해왔다. 그 정점이 노무현 정권 때 만들어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일 것이다. <풀어서 본 반민특위 재판기록>(전 4권)은 ‘밝히고자 하는 자’의 이런 노력이 거둔 결실이다. 정운현 위원회 전 사무국장은 ‘감추고자 하는 자’들이 끝내 훼손하지 못한 반민특위 재판기록을 1999년부터 10여년 동안 ‘풀어쓰는 작업’을 해왔다. 원자료가 초서체인데다 한자말 또한 워낙 많아서 학자들조차 접근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밝히고자 하는 자’의 이런 10년 노력은 경찰, 중추원 참의, 기업인, 군수업자, 종교인 등 다양한 직업군의 친일인사 64명을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로 다시 역사 앞에 내세운다. 반민특위 활동이 중단된 뒤 꼭 60년 만이다. /선인·8만원. 한겨레신문 김보근 기자 tree21@han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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