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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서재/좋은책

책: 만들어진 현실


                               〈만들어진 현실- 한국의 지역주의,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문제가 아닌가〉
                                                                    박상훈 지음/후마니타스·1만5000원


 

다음과 같은 주장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대다수 한국 유권자는 지역주의(지역감정·지역정서 등)에 이끌려 투표한다. 정치인들은 이를 이용해 지역당을 만들었고 선거만 하면 지역분할구도가 드러난다. 지역주의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옛날부터 존재했다. 지역주의의 핵심은 영호남 갈등이다. 이 두 지역 갈등이 사회 전체를 지역주의로 물들였다. 지역주의 때문에 정치 발전이 안 된다. 민주화됐는데도 정당체제가 계층이나 이념적 차이에 따라 재편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지역주의 때문이다. 지역주의는 망국적인 고질병이다. 그러니 특단의 조처가 필요하다.

‘한국은 왜 민주화를 기점으로 지역이 중심이 되는 정치적 갈등 구조를 갖게 됐을까?’라는 주제의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만들어진 현실>에서 위의 주장 모두에 대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허구이며, 책 제목이 암시하듯 설사 그게 ‘현실’로 일부 존재한다 하더라도 본디부터 그런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얘기한다. 지역주의가 망국적인 고질병인 것이 아니라 ‘지역주의가 망국적인 고질병이다’라고 외쳐대는 것이야말로 망국적인 고질병이라고 박 대표는 주장한다. 왜, 무엇 때문에? 그래야 자신들만의 특권적 이익을 키우고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한국의 지역주의는 풍토병이 아니라 그런 자들이 합성해서 퍼뜨린 악성 바이러스 같은 것이다.

여러분 자신은 정말 선거 때마다 지역주의에 사로잡혀 따져볼 것도 없이 무조건 ‘우리 지역’ 출신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묻지마 투표’를 하는가?

박정희-김대중이 맞섰던 1971년 대통령선거가 영호남간 지역주의 선거라는 생각은 잘못된 ‘기억의 정치’, ‘편견의 동원’, ‘전통의 발명’에 따른 산물이다. 강원도에서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됐던 김대중은 1971년 대선 때 부산에서 42.6%를 득표했다. 이는 그전 대선 때의 윤보선이 얻은 것보다 11%포인트나 더 많았고 대구에서도 8.8%포인트 더 많았다. 박정희도 1963년 대선 때 서울과 경기, 충청에서는 40%대 초반 지지율로 고전했으나 전남·북에선 각각 62%, 54%의 득표율을 올렸다.

1977년 조사(김진국)에 따르면, 호남 출신에 대해 가장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지역민은 영남이 아니라 서울과 충청 출신이었다. 반면 호남 출신자가 가장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 지역민은 영남 출신이었고 호남에 대한 기피증이 가장 덜한 쪽이 영남인들이었다. 이는 권위주의 개발독재의 불균등 개발전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산업화가 수도권과 영남 축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영남의 하층 이주자들은 부산·울산 등 같은 영남권 내 개발지역으로 이동했으나 호남과 충청 지역민들은 대부분 서울 쪽으로 몰렸다. 영남에서 서울로 이주한 사람들은 고학력자나 관료 등 엘리트 중산층이었다. 따라서 사람들이 몰리는 도시권, 그중에서도 수도권에서 하층민들간 생존경쟁이 격심했고 호남 출신 이주자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싹이 거기서 자랐다는 게 박 대표 생각이다. 개발독재의 성장정책이 본격적으로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한 1960년대 후반 1970년대 초에 이런 불균등한 성장과 차별적인 엘리트·인력 충원에 따른 지역간 편견과 불만이 조성되기 시작했으나, 그것을 지역주의로 ‘발굴’하고 증폭시켜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은 특정 정치세력이었다.

이미 1971년 대선 때 박정희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눈물로 애소해야 할 정도로 권력상실 위기에 처했다. 영호남을 빼고 계산하면 김대중 지지표가 더 많았고 유독 전남에서만 10만표 이상이 무효 처리되는 부정행위 등을 통해 박정희는 간신히 이겼다.(96만표 차) 김대중은 중앙정보부 기능 축소와 국회심의제, 향토예비군제 폐지, 적대적 남북관계 개선과 4대국 보장안, 대중경제, 부유세 도입 등 권위주의체제와 불균등 개발정책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고 대중들은 사실상 그의 팔을 들어준 셈이었다. 박정희의 영구집권을 제도화한 ‘유신헌법’이 공포된 것은 바로 그다음 해였고 그때부터 반공이데올로기와 결합한 지역감정, 지역주의가 대대적으로 유포되기 시작했다. 유신체제를 앞세운 권위주의 기득권세력은 이에 저항한 민주화세력의 도전을 지역주의 문제로 치환하고 그것을 극도로 부풀림으로써 진실을 호도하고 정치적 곤경을 피해가려 했다. 거기에는 반유신 민주화 정치세력 리더가 호남 출신이라는 점과 호남인들의 소외의식(선행한 차별로 말미암은 소외의식과 거기에 대한 반발 내지 저항은 합리적 선택이며, 그것을 지역주의로 몰아가는 건 본말전도다)도 작용했다.

지역주의가 달아오르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때부터였고 1980년, 1987년, 그리고 지금까지 기존 권위주의체제가 흔들리는 고비 때마다 더 한층 증폭됐다. 이른바 ‘3김’(3K)으로 대표됐던 지역주의가 ‘망국적’ 차원으로까지 부각되고 전면화한 것은 1987년 6월항쟁으로 제도적 민주화가 달성된 이후의 일이며, 그것은 민주화로 기득권 상실 위기에 처한 개발독재체제와 한 배를 탄 동조세력이 느낀 공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3김정치와 지역주의, 지역감정 때문에 나라가 망할 지경에 처했다며 지역감정과 3김의 청산을 그 해법으로 제시하면서 민주화와 권위주의 독재청산 문제를 지역주의 문제로 바꿔치기해 문제의 본질을 호도했다. 거기에 앞장선 것이 정당(우파 집권당은 말할 것도 없고 중도개혁과 극좌세력까지 포함해)과 언론이었으며, 언론 중에선 <조선일보>였고 또 그 전면에 나선 이가 전 주필 김대중씨였다. 그들이 망국병을 타파할 대안이라며 밀어올린 게 바로 자신들의 특권을 지켜줄 전두환·노태우 신군부세력이었다. 그들 기득권세력의 ‘3김과 지역주의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는 언설은 기실 ‘민주화를 그대로 두면 우리가 망한다’는 얘기였고,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 그들은 지역주의를 발굴하고 창조하고 부추기며 대대적으로 동원했다. 지역주의야말로 그런 위장극을 숨겨준 알리바이 담론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지역정당체제’는 지역주의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지역주의가 문제가 아니라, 지역주의가 문제라고 주장하는 세력이 문제이며, 그런 상황에서 아무리 지역주의를 타파하고 지역간 화해로 망국병을 고치자고 외쳐봐야 고쳐질 병이 아니라는 것, 병을 고치려면 지역주의에 빌미를 주는 정치·경제·사회 구조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게 박 대표 생각이다. 그것은 가치의 분배구조, 수도권에 초집중화한 사회구조, 소수가 부를 독점하는 동심원적 엘리트 카르텔 구조, 협소한 이념적 스펙트럼과 미미한 계층적 차별화 등을 특징으로 하는 보수 독점적 정당체제, 이러한 조건에서 만들어진 하층 배제적 사회문화 등 민주화 이후에도 아직 제대로 손대지 못한 난관들을 먼저 혁파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출처: 한겨레신문 2009-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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