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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사기,실정백서/통일,외교

이명박은 모른다

* 경향신문의 이대근 논설위원의 칼럼(]2009-12-23) 입니다.


이명박은 모른다 

이대근 논설위원 

첫째, 이명박은 하토야마가 왜 오바마의 말을 안 듣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하토야마는 후텐마 비행장 이전 합의를 지키라는 오바마의 요구를 거부하고 이전 장소 결정을 내년으로 미뤘다. 비행장 하나 때문에 50년 만의 동맹 위기를 각오하며 오바마와 갈등하는 걸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비행장 이전은 미·일이 지구적 동맹을 유지할 수 있을지 시험하는 무대이다. 미국은 9·11 사건 이후 반테러·반확산 전략에 따라 전세계 주둔 미군의 재편을 추진했다. 자민당 정권은 그런 미국의 동맹 재편에 최대의 협력을 해왔다. 일본은 주일미군 재배치를 위해 아낌없이 양보하고 불평등과 불이익을 감수했으며, 그 결과 미국이 새로 구축한 지구적 동맹 네트워크의 핵심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회의론이 고개를 들었다. 미국의 전쟁을 위해 세계 어디든 달려가는 게 옳은가,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가. 금융위기에서 드러났듯이 미국의 자본주의·헤게모니는 흔들리고 있다. 미국은 일본의 미래가 아니다. 일본은 언제까지 미국에 얽매여 살아야 하는가. 그런데 고이즈미 정권은 미·일동맹 강화로 주변국에 불안을 조성하더니 기어코 한국·중국과 충돌, 관계를 악화시켰다. 미국의 약화, 중국의 부상이라는 동아시아 정세와도 어울리지 않는 방향이었다. 이제 균형이 필요하다. 이게 하토야마의 인식이다.

미와 갈등하는 ‘하토야마 고뇌’를

그러나 한·미동맹 만능주의에 빠져 있는 이명박은 예상대로 한·중 관계를 무시하고 남북관계를 악화시켰다. 한·미 정상이 지난 6월 발표한 동맹 미래 비전은 “우리 정부와 시민은 테러와 대량살상무기 확산이라는 지구적 도전에 긴밀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되어 있다. 이 합의에 충실하자면 한국 시민은 미국이 벌여놓은 전쟁을 위해 지구 구석이라도 달려가야 한다. 아프가니스탄 재파병 결정을 보면 한국이 정말 미국과 함께 지구적 도전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된 것 같다. 그러나 샤프 주한미군 사령관이 주한미군을 세계 분쟁지역에 배치할 필요가 있다고 하자 반응이 싸늘하다. 전시작전통제권도 환수하지 말자고 한다. 한국은 지구 방위군 역할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대책도 없으면서 미국을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만 굴뚝 같은 단순한 이명박이, 합의를 깨서라도 균형을 추구하느라 지지를 잃어가고 있는 ‘하토야마의 고뇌’를 알 리 없다.

둘째, 이명박은 오바마·하토야마가 왜 중국과 가까워지려 하는지 모른다. 중국은 1990년대 중반만 해도 다자 무대에 나서지 않았고, 그래서 국제관계에서 중국의 존재는 미약했다. 그러나 이제 중국은 군사·경제 강국일 뿐 아니라 6자회담 의장국이자 자유무역협정, 동아시아 공동체를 추진하며 국제 레짐을 주도하는 외교 강국이다. 이런 중국의 힘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이웃이면서도 중국을 무시하고 거리를 둔 이명박은 대단한 뱃심이 있거나 아니면 불감증이거나 둘 중 하나이다. 어떤 생각인지 모르지만, ‘미·중 및 중·일관계 강화, 한국 고립’이 무슨 전략일 수가 없다. 견제냐 포용이냐의 이분법을 뛰어 넘어 대중관계 강화에 나서는 오바마·하토야마의 현실주의적 감각을 이명박이 뒤늦게라도 갖게된다면 다행이겠다.

셋째, 이명박은 후진타오가 왜 김정일을 버리지 않는지 모른다. 북한의 두 차례 핵실험으로 상대 감정을 상하게 하고도 남을 비난전을 전개할 때 중국은 더 이상 북한을 특수 관계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중국은 대북 제재가 한창일 때 고위급 방북 및 대북지원으로 오히려 제재 전선을 흩뜨려 놓았다. 물론 북한 편들기나 제재 이탈은 아니다. 북한을 설득하는가 하면 압박하고, 제재하는가 하면 유인하는 줄타기일 뿐이다. 중국이 보편적 원칙, 국제 기준만 적용할 생각이면 북·중관계 단절을 감수해야 한다. 대북지렛대는 물론 북한을 이용한 대미카드도 잃고, 한·중 및 한·일관계에서의 영향력 약화도 각오해야 한다.

후진타오가 왜 북을 안버리는지

그러고 싶지 않다면, 다자 관계와 상관없이 양자관계를 일정 수위로 유지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명박은 보편적 원칙이 우선이라며 대북강경책으로 일관, 남북관계를 포기함으로써 중국 못지않게 동원할 수 있는 북한카드를 버렸다. 이렇게 경직된 이명박이 김정일을 포기하지 않는 후진타오의 전략적 유연성을 이해할 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