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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사기,실정백서/통일,외교

시대착오적 한국의 ‘네오콘’

* 다음은 한겨레신문( 2009.12.22) [아침햇발] 오태규/온설위원의 칼럼입니다.

한국의 ‘네오콘’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집권(2001~2009) 전반 6년의 대외정책을 좌지우지한 세력은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었다. 당시의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폴 월포위츠 국방 부장관, 존 볼턴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이 핵심이었다. 이들은 세계를 선악으로 구분한 뒤 악의 세력을 척결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다. 이런 구상 아래, 북한을 이라크·이란과 함께 3대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사정없이 몰아붙였다. 2002년 석연치 않은 우라늄 핵개발 의혹을 빌미로 2차 핵위기를 일으켰고, 그 결과로 1994년 제네바합의는 깨졌다. 그들은 대화를 보상으로 간주했고, 붕괴냐 항복이냐의 선택을 강요했다. 하지만 부시 정권의 2006년 중간선거 참패 이후 상황이 일변했다. 이라크 침공을 비롯한 일방주의적인 대외정책이 주요한 패인으로 지목되면서 네오콘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그러면 지금 한국의 사정은 어떤가? 불확실한 정보와 비합리적 판단에 근거해 강경 일변도 정책을 밀어붙였던 네오콘의 과오를 우리가 되풀이하는 듯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한국의 네오콘’이 외교안보 부서의 요직을 점령하고 대북 강경몰이를 주도하고 있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의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 외교통상부의 이용준 차관보, 통일부의 현인택 장관, 국방부의 김태영 장관이 주역이다. 김영삼 정권과 김대중·노무현 정권, 이명박 정권을 거치며 시류에 편승해온 유명환 외교장관도 빼놓을 수 없다. 원로급에선 이상우 국방선진화추진위원장(전 서강대 교수),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전 안기부장 특보) 등의 활동이 눈에 띈다.

이들은 강한 횡적·종적 유대를 맺고 있다. 대북 강경론자의 핵심인 김 대외전략비서관은 이 위원장의 서강대 시절 수제자이다. 또 현 통일장관과 함께 ‘비핵·개방·3000’ 정책을 입안했다. 김 국방장관도 서강대에서 석사를 할 때부터 이 위원장과 인연이 깊다. 이 외교차관보는 98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 통일외교안보분과에서 외교부 파견 행정관으로 일하며 이동복 인수위원과 호흡을 맞춘 사이다. 미국 유학파 출신의 보수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서울포럼은 한국 네오콘의 온상 노릇을 한다. 이 위원장, 현 장관, 김 비서관과 이명박 정부 초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김병국 고려대 교수가 모두 이 포럼의 회원이다. 지금의 통일자문회의 고문단과 대통령 외교안보 자문교수단은 이 포럼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한국의 네오콘은 미국의 네오콘이 제네바합의를 인정하지 않았듯이, 6·15와 10·4선언을 무시한다. 유 외교장관과 이 차관보가 지난해 아세안지역포럼 때 두 정상선언이 의장성명에 포함되지 않도록 외교전을 편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또 미국 네오콘이 경수로 건설과 중유 지원을 미국의 자존심을 해치는 일이라고 공격했듯이, 이들은 거의 모든 대북 협력사업을 퍼주기라고 비판하며 민간단체의 인도적 지원까지 막고 있다. 북한과는 대화가 안 되니 항복할 때까지 밀어붙여야 한다는 생각도 같다. 심지어 이 위원장 같은 이는 북핵은 대남 적화통일의 수단이므로 물리적으로 제거해야 하고, 주변국에 이를 용인받는 외교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 외교장관이 북핵의 주목적이 대남 적화통일이라고 하거나 김 국방장관이 북핵 선제공격론을 제기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중요한 점은 이들의 생각과 정책이 실효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네오콘의 실패와 최근의 정세는 ‘아니오’라고 말한다. 이 대통령은 미국 네오콘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한국판 네오콘과 결별하고 시대변화와 결합해야 한다. 외교안보 진용의 물갈이가 시급하다. 오태규 논설위원 oht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