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작전권 환수’ 오해와 진실
출처: 한겨레신문 2010-06-25
전시작전통제권을 주한미군사령관에서 대한민국 합참의장으로 전환’(전작권 전환)하는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오랜 역사를 지닌다. 전작권 전환 연기론자들은 전작권이 전환되면 주한미군이 철수할 것이고, 한국군이 아직은 독자적으로 전작권을 행사할 능력이 없다고 강조한다. 또 전작권 전환은 엄중한 안보 현실을 무시한 노무현 정부의 돌출 결정이라고 비난해왔다. 몇 가지 쟁점으로 나눠 이런 주장의 허실을 짚어봤다.
참여정부 돌출정책?
박정희 대통령 처음 제기
노태우 대통령 ‘대선 공약’
보수진영은 전작권 전환이 노무현 정부의 ‘반미자주’란 비뚤어진 이념과 민족주의에 기댄 인기영합주의에서 비롯됐다고 여긴다. 하지만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처음 꺼낸 이는 1960년대 후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다. 1968년 1월21일 북한 특수부대의 청와대 습격사건과, 같은 해 1월23일 북한의 미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 나포사건의 대처를 놓고 당시 한-미 정부는 충돌했다. 미국이 청와대 습격엔 아무 대응도 않다가 푸에블로호 사건에는 전쟁 직전 단계인 데프콘2를 발령한 탓이다. 이에 격분한 박 대통령은 미국에 작전통제권 환수를 요구했다.
작전통제권 환수는 1987년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의 대선 공약으로 다시 공식 제기됐다. 이후 한-미 군사당국간 작전통제권 환수 논의를 거쳐 1994년 12월1일 김영삼 정부에서 평시작전통제권이 환수됐다. 1995년에 국방부는 2000년 전후에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주한미군 철수하나?연기해도 병력감축 못막아
보수 진영에서는 전작권이 전환되면 주한미군이 감축·철수하거나 유사시 미군 증원 전력 지원이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주한미군 주둔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근거를 두고 있으므로 전작권 전환과는 직접 관계가 없다. 설혹 전작권 전환 시기가 다소 늦춰지더라도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전략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주한미군의 병력 감축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즉, 한미연합사 ‘작전계획 5027’은 전쟁 발발 90일 이내에 미군 병력 69만여명을 증원 전력으로 한반도에 배치하도록 하고 있지만, 2001년 ‘9·11’ 이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 등에 묶여 있어 유사시 미군 증원 병력은 20만~30만명을 넘기 어려울 것으로 군은 판단하고 있다.
한국군은 불안하다?
1995년 기준 전투력 비교
“북한은 한국의 40% 수준”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국방비와 세계 6위권의 병력을 갖춘 군사강국이다. 다수의 안보전문가는 한국의 국방 능력은 북한 군사력을 억제할 수 있는 충분한 수준의 전력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 지난해 8월 국가정보원은 주한미군이나 전시 증원 병력을 배제해도 한국군이 북한군보다 10%가량 우세하다는 남북한 군사력 비교 연구 결과를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적인 군사전문가인 미국의 제임스 더니건도 1995년 기준으로 북한의 전투력을 한국의 약 40% 수준으로 평가한 바 있다.
한 예비역 장성은 24일 “천안함 사태 때 군 지휘부가 허둥댄 것은 60년가량 독자적으로 작전을 기획하고 운용해보지 못한 탓도 크다”며 “오히려 전작권 환수를 작전기획 및 운용능력을 키우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전쟁 결정권·방위 주도권, 미국서 한국 손으로
전작권 전환 무엇이 달라지나
미 1994년 북한 영변핵시설 폭격 준비때
청와대는 아무런 통보조차 받지 못해
전작권없인 한국군 독자군사행동 불가능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이 전환되면 무엇이 달라질까? 이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은, 전작권 전환을 둘러싼 전환론자와 연기론자의 오랜 논쟁의 적실성을 판단하는 하나의 잣대를 제공할 수 있다.
군사지휘체계 변화가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전작권 전환의 핵심 뼈대는 의외로 간단하다. 미군 4성 장군인 한미연합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이 행사하던 한국군 전작권이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에게 넘어오게 된다. 이는 ‘한국이 전쟁 결정권을 갖는다’는 뜻이다.
첫째, 전작권 전환을 찬성하는 쪽의 문제의식은 ‘한반도에서의 전쟁 결정이 우리 손에 있지 않고 남의 손에 있다’는 것이다.
제1차 북핵위기가 정점을 향해 치닫던 1994년 5~6월 미국 정부는 북한 영변 핵시설에 대한 공중폭격 등 사실상 한반도에서 전면전으로 비화할 수 있는 대북 무력 제재를 준비했다. 하지만 당시 청와대는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 비서실장이던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뒷날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미국은 한국에 대한 통고, 군사력 결집, 한국 주재 미국인 피난 등의 사전조처들이 북한에 사전공격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고 판단해 (한국에 통보 없이) 바로 공격을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경악을 넘어서 ‘우리의 운명이 이렇게 결정되고 있었구나’ 하는 허탈감을 느꼈다”고 밝힌 바 있다.
보수진영에서는 천안함 사태 뒤 단호한 대북 군사보복을 주문했다. 하지만 한국군의 독자적인 대북 군사행동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국군이 1994년 12월 평시작전권은 환수했지만 전쟁억제, 자위적 대응 등 6개 사항은 한국 합참이 한미연합사령관에게 권한을 위임했기 때문이다.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위임된 이 평시작전권 6개 사항도 전시작전권 전환이 이뤄지면 위임 상태가 소멸된다. 이 때문에 천안함 사태 뒤 대북 군사보복과 전작권 전환 연기를 함께 외치는 보수진영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둘째, 한국 방위를 한국이 주도하게 된다. 한반도 전면전에 대비한 ‘작전계획5027’은 엄밀히 말하면 미국의 한반도 작전 계획이다. 5027에서 앞의 숫자 ‘50’은 미 국방부 작전암호상 한반도 지역을 뜻하고 뒤의 ‘27’은 상황에 따른 세부계획이다. 작계5027은 한국군이 아닌 미 태평양사령부가 총괄한다.
한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달린 작계5027은 미국의 세계군사전략의 하위범주라는 뜻이다. 한미연합사에서 오래 근무한 한 예비역 영관급 장교는 “한국군이 미군이 짜준 작계를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치우치다 보니 전술적 사고에 그치고 20~30년 뒤를 내다보는 전략적 사고를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방위의 한국화’와 전작권 전환은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한국군 정원이 60만명으로 묶여 있는 것도, 1960년 한-미 합의에 따른 것이다. 당시 한국은 한국전쟁으로 피폐해 국방예산을 모두 미국 군사원조로 충당해야 했다. 미국은 한국군 숫자가 너무 많으면 원조액이 늘어나고, 당시 이승만 정권이 북진 등 단독 군사행동에 나설 것을 우려해 한국군 정원을 60만명으로 묶었다.
한 군 소식통은 “미국의 전쟁물자로 전투를 치르고 미 군사고문관이 대대까지 상주해 작전계획을 짜주던 한국전쟁 때는 전작권 이양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며 “한국이 경제규모 13위권, 군사비 지출 10위권에 이른 지금은 군사권 제약의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군사주권에서도 시대착오 ‘삽질’
» 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 교수
주권국가로서 참으로 부끄럽고 수치스럽다.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군통수권은 군사주권의 핵심이고, 군사주권은 국가주권의 상징이다. 자기 나라 군대를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은 식민지 군대나 패전국으로 군사점령을 당한 곳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전작권 환수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됐던 2006년 당시 환수 반대론자들이 내세웠던 논리는 매우 단순했다. 환수가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져 한-미동맹 붕괴를 초래하고, 미국 본토로부터 미 증원군의 파견을 어렵게 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 논리가 얼마나 허구적인지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다.
도대체 왜 이 시점에서 전작권 환수를 연기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최소한 그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해야 한다. 단지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가스통 할배들”에게나 먹힐 수 있는 궁색한 논리다.
천안함 사건은 오히려 전작권 환수의 필요성을 일깨워 준 사건이다. 미국이 전작권을 보유하고 있고 ‘연합작전위임사항’(CODA)에 의해 훈련에 대한 주도권을 미군이 행사하도록 돼 있는 한-미 합동 군사훈련 기간 중에 발생했기 때문이다. 전작권 환수가 늦어질수록 그만큼 정보력에 대한 대미 의존이 심화되고 육해공군의 균형발전이 저해될 수밖에 없다.
전작권 환수 연기는 명분도 없지만 실익도 없다. 그동안 전작권 이양을 전제로 투자해온 천문학적인 국방비와 인적·물적 비용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전작권 환수와 자주국방을 명분으로 매년 10% 이상의 국방비 증액을 해왔고, 2012년 환수를 목표로 이미 환수 준비가 상당 부분 진척된 상태다. 또 전작권 연기의 대가로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미사일 방어체제(MD) 참여 등 미국에 지불해야 할 비용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도 우려되는 것은 만약 전작권 환수가 지연되거나 무산된다면, 그동안 어렵게 추진해온 자주국방과 우리 군의 미래지향적 군 개편은 물건너가게 된다는 점이다. 미래지향적인 안보정책과 군사전략을 수립하고 그에 걸맞게 우리 군대를 발전시키고 개편하기 위한 전제는 전작권의 환수다. 우리 군대가 총동원되는 작전계획이 미국 태평양사령부의 ‘작계5027’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미국의 처지에서 한국군은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목표를 수행하는 부속품 하나에 불과하다.
미국은 환수 연기의 반대급부로 많은 양보를 받아낼 수 있어 손해 볼 것 없는 장사다. 특히 대미균형외교를 내세우며 주일미군기지의 축소를 요구하고 있는 일본 민주당 정권을 견제하고, 동북아에서 군사적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전작권 이양을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
미국의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오랫동안 논의를 거친 한-미 양국 정부의 합의를 뚜렷한 이유와 설명 없이 하루아침에 뒤집는 꼴이기 때문이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 보여준 미국의 태도와 맞물려 한국 내에서 미국에 대한 불신이 고조되고 반미감정이 커질까 우려된다.
북한보다 경제력이 40배나 되고 북한의 국내총생산(GDP)보다도 많은 군사비를 지출하고 있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인 나라에서 외국군대에 전작권을 넘겨주어야만 국가안보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런 무능한 정권은 당장 퇴진하고 대통령은 하야해야 되는 것 아닌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노무현이 MB에게 주는 충고
굴욕적인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연기, "심리적 의존 관계를 벗어나 대등한 외교 관계 구축해야" (2006년 연설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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