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명박이 ‘죽은’ 노무현에게 혼쭐나다
한겨레신문 2010-06-02 오후 06:49:24
6·2 지방선거는 누가 뭐래도 이명박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이다. 이번엔 특히 지방선거 시기가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거의 절반되는 때에 배치되어 있다는 점에서 중간평가의 의미가 더욱 크다.
중도실용과 경제살리기를 앞세워 큰 표 차이로 집권한 이명박 정권은 시작부터 유권자를 배반하기 시작했다. 권위주의 시대의 억압적인 통치를 강화하고 남북대결적 자세로 중도실용을 말아먹고, 강부자 내각의 구성과 종부세 폐지로 상징하는 부자 편들기로 경제살리기를 왜곡했다. 용산참사는 탐욕 위에 쌓은 이명박 정권의 무자비성을 드러냈고,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의 구속과 끈질긴 촛불 탄압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확장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상징이었다. 최근에 벌어진 천안함 침몰사태와 그 대응방안은 이명박 정권이 안보중시 정권이 아니라, 안보무능 정권임을 보여줬다.
한마디로 이명박 정권의 정책기조는 노무현이 한 것과는 정반대로 가는 것이었다. 서민중시는 부자중시로, 남북화해는 남북대결로, 자주외교는 강대국 추종외교로, 민주주의 확장은 민주주의 후퇴로, 광장에서 밀실로 변화했다. 사실 이런 모든 것을 극적으로 상징하는 사건은 1년 전 있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와 이로 인한 ‘사실상의 타살’ 사건이었다.
이때부터 이명박 대통령은 사실상 죽은 노무현과 운명적인 대결의 길을 선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숨진 뒤 전국을 노란물결로 물들인 추모 열기로 볼 때 이 대통령에게 놓인 선택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노무현의 가치를 극복하는 대안을 제시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 것이고, 남은 하나는 노무현의 가치를 자신이 흡수해 정책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었다.
이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마저 숨진 뒤 김 전 대통령의 국장 요구를 수용하고 개혁성향의(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경제학자인 정운찬 서울대 전 총장을 총리를 기용하면서 노무현의 가치를 일부 수용하는 듯한 자세를 보였다. 하지만 이런 서민중시 포장술로 지지율이 상승하자 애초의 발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이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상징으로 추진한 세종시를 형해화하는 작업에 착수하고, 사실상 대운하와 다를 게 없는 4대강사업을 고장난 불도저처럼 밀어붙었다. 아랍에미리트의 원전수주, G20 정상회의 개최 등의 외화내빈 외교를 유능외교로 포장하면서 국가의 안위가 걸린 한반도 외교에선 강대국에 주도권을 갖다받치는 외교로 일관했다. 대책없는 선핵폐기 대북정책으로 북한이 중국의 동북4성화하도록 내몰았고, 천안함 사건 대응에서 보듯 한반도 정세를 1953년 휴전 이래 최악의 긴장상태로 몰아갔다. 중국이 북한을 자신의 국익을 지키는 사활적인 방파제로 여기고 있는 현실을 무시한 채 중국을 압박하고 중국에 투정부리는 외교를 함으로써 미국과 함께 한반도 문제가 가장 전략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는 중국의 반발을 샀다. 더 불행한 일은 남북긴장과 함께 한반도 긴장을 불러일으킴으로써 한반도 문제에서 미국과 중국의 목소리를 키우고 우리의 주체적 목소리를 제로화하는 한심한 상황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이명박 정권은 천안함을 유권자에게 팔아 안보심리, 보수심리를 불러일으키면 지방선거에서 낙승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 차원에서 정권의 나팔수가 된 방송과 보수언론을 한껏 활용해 천안함 긴장국면을 확대 재생산했다. 이른바 조중동이 선거 날 만든 신문의 1면 머릿기사에 지방선거 대신 안보불안 심리를 부추키는 기사를 채운 것이 단적인 예이다. 겉으로 드러난 여론조사도 한나라당의 독주를 예고했다.
하지만 유권자는 산 이명박이 아니라 죽은 노무현을 택했다. 투표가 끝난 뒤 방송 3사가 발표한 여론조사를 보면, 한나라당이 5곳(대구, 경북, 경남, 부산, 울산), 민주당이 5곳(인천, 광주, 전북, 전남, 강원)에서 우세한 것으로 나왔다. 한나라당이 압승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서울, 경기를 포함해 경남, 충북, 충남이 경합으로 발표되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동안 공개되었던 여론조사와는 달리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친보수, 친재벌, 반평화 정책이 밑바닥에서 깊은 불신을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이번 도지사 선거에서 대활약을 벌인 민주당 등 야권후보들(한명숙 서울시장 후보, 유시민 경기도지사 후보, 이광재 강원도지사 후보, 안희정 충남도지사 후보, 김두관 경남도지사 후보)이 거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이란 점은 유권자들이 다시 노무현의 가치를 새로운 정치, 이명박 정치를 대신할 대안으로 선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무현의 아들·딸들’의 선전은 단지 여권에 대한 경고만이 아니다. 정세균 대표로 상징되는 패기없고, 유약하고, 비전을 제시하고 못하고 있는 야당 지도부에 대한 불신의 표시이기도 하다. 마지막까지 개표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서민중시, 민주주의 중시, 남북화해로 요약되는 노무현 가치는 그가 비운의 죽음을 맞은 지 거의 1년 만에 화려한 부활을 맞았다. 여든 야든 앞으로 정치권은 부활한 노무현의 가치를 어떻게 승화·발전시키는냐는 숙제를 안게 되었다.
물론 가장 주목되는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그가 이번 기회를 죽은 노 대통령의 가치를 흡수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냐, 아니면 또다시 대결자세를 취할 것이냐에 따라 정국의 향방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그 위에 박근혜 변수까지 더해질 경우 그는 지금까지보다 더욱 험난한 항해를 해야 할 것이다. 민주당도 이번 선거를 계기로 리더십이 크게 불신받았다. 민주당은 당장 새 리더십 논쟁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그 핵심은 노무현으로부터 계승받을 것은 무엇이고 지양할 것은 무엇인가가 될 것이다. 여하튼 이번 6·2지방선거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죽은 노무현이 산 이명박보다 낫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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