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향신문의 2010-01-12일자 사설
세종시 수정안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했다. 세종시에 대한 국민여론을 수렴하겠다면서 정부가 민관위원회를 출범시킨 지 2개월 만이다. 수정안의 핵심은 정부가 이 문제의 공론화를 위해 뜸들이기 시작한 4개월 전에 예상했던 대로다. 9부2처2청의 세종시 이전을 백지화하고, 기업·학교·연구소 등의 유치 계획과 지원방안을 구체화한 것이다. 간단히 말해 세종시 원안인 ‘행정중심 복합도시’에서 행정부처를 뺀 ‘복합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세종시는 수도권 집중 완화와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 과제로부터 비롯된 도시다. 목적 달성의 효율성을 위해 ‘행정을 중심으로 하는 복합도시’가 선택됐다. 이것이 세종시의 정체성이다. 정부의 수정안은 세종시의 정체성을 폐기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세종시 특별법은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대의에 걸맞게 숱한 논란과 두 차례의 헌재 결정을 거쳐 2005년 여야 합의로 만들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국민적 합의로 탄생한 세종시를 3년째 공사가 진행 중인 현 시점에서 백지화해야 할 현실의 변화는 아무것도 없다. 단지 이명박 대통령이 ‘국가 백년대계’를 내세워 그렇게 해야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특별법으로 뒷받침된 국민적 합의를 대통령 한 사람의 생각으로 뒤엎겠다는 독선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세종시의 차질 없는 추진을 누누이 약속했던 대통령으로서 국민에 대한 신의, 정책의 일관성, 법의 안정성 등은 별개의 문제다.
이 대통령과 정 총리가 세종시 백지화의 명분으로 내건 것은 부처 이전의 비효율과 자족기능 부족뿐이다. 군색하기 짝이 없는 논리다. 비효율 문제는 세종시 계획이 특별법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이미 수많은 논의와 검토를 거쳤다. 오랫동안 말의 성찬에만 그쳤던 국가 균형발전을 실천하고, 부처 이전이라는 솔선수범을 통해 정부 의지를 극대화하려 한 것이다. 한나라당이 특별법에 찬성한 것도 비효율 문제가 세종시 특별법 1조에 제시된 지역 균형발전과 수도권 집중 완화라는 대의를 넘어설 수 없다고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족기능 부족 논리는 더 설득력이 없다. 세종시 원안에 담긴 기업 등의 유치 계획을 보완하면 충분할 일을 빌미로 부처 이전을 백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세종시 백지화의 당위성과 진정성을 국민에게 설득하지 못했다. 노무현 정권 정책의 뒤집기로 보는 시각은 그래서 국민에게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수정안의 부작용은 이미 가시화하고 있다. ‘퍼주기’식의 기업·학교 유치를 위해 정부가 제시한 내용은 지원책이라기 보다 특혜다. 땅값·세금 등 각종 특혜는 도시정책의 근간을 뒤흔들기에 충분하다. 조성원가에 턱없이 못미치는 값으로 원형지 개발권을 주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로 인한 주택토지공사의 손실은 결국 국민 부담으로 떠넘겨질 것이다. 혁신도시·기업도시 등 타 지역민들의 피해의식과 반발은 불보듯 뻔하다. 정부는 세종시가 기업의 블랙홀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맞지 않는 얘기다. 세종시가 아니면 다른 어딘가로 가게 될 기업·학교 등을 특혜를 주면서 세종시로 몰아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 자체가 지역 균형발전에 역행하는 것이다.
수정안 논의 과정에서 보여준 꼼수는 국민을 우습게 아는 오만과 독선의 전형이었다. 애초부터 세종시 원안은 논의 대상에서 배제됐다. 세종시 민관위원회도 예상대로 세종시 백지화를 전제로 한 정부안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에 충실했다. 정부·여당은 불과 2개월 전까지도 세종시 건설계획에 변함이 없다는 말을 되풀이해 국민을 기만했다. 이 대통령 자신도 정 총리라는 대리인을 내세워 연기만 피우는 떳떳지 못한 자세를 보였다. 정부 수정안 발표를 계기로 본격화할 정부·여당의 여론전 속에 여야는 물론 여권 내부, 그리고 전국적인 분열과 대립이 가속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 모든 분란을 자초한 것은 이 대통령 자신이다. 행정 비효율을 거론하기에 앞서 국론 분열과 대립에 따른 비효율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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