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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사기,실정백서/정치,경제

국회의장 무자격자, 김형오

* 국회의장으로서 무자격인 행동을 비판한 한겨레신문의 2010-01-07 일자 사설

삼권분립 흔든 대통령과 국회의장의 전화통화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1일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노동관계법 개정안 처리를 독려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국회의장실은 노동관계법 직권상정은 김 의장의 독자적 결정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선 의장실도 이 대통령이 노동관계법 처리 지연에 대해 걱정하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우려’가 김 의장에게 압력으로 작용했으리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애초 노동관계법을 직권상정하지 않겠다고 몇 차례나 공언했던 김 의장이 갑자기 마음을 바꾼 것 자체가 전화통화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이번 일은 우리 정치에서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원리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국가권력의 작용을 입법·행정·사법의 셋으로 나눈 것은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해 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대통령과 국회의장의 전화통화와 이후 전개된 사태는 이런 기본원칙이 깨져버렸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여야가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직접 입법부의 수장에게 전화를 건 것부터가 합당하지 않다. 이 대통령은 여당 대표가 제안한 3자회동 제의는 거부한 채 법안 통과의 방망이를 쥐고 있는 국회의장을 압박하는 비상식적 방법을 선택했다.

이 대통령의 행위도 부적절했지만 대통령의 요구를 덜컥 받아들인 김 의장의 태도는 더욱 호되게 비판받아 마땅하다. 자신이 입법부의 수장인지, 아니면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꼭두각시인지를 분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 의장은 입법부 최고책임자다운 기개나 자존심을 보여주기는커녕 국회를 청와대의 하수인쯤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김 의장의 올바르지 못한 처신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연말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회의장 나홀로 농성’을 벌이는가 하면, ‘대운하 포기 공동선언’ 따위의 편파적이고 공허한 제안이나 내놓더니 결국 예산안 강행처리의 총대를 멨다. 특히 지난해 7월 언론관련법 날치기 통과에서부터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법안 재논의 거부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은 무책임과 직무유기의 전형이다. 당시 헌재로부터 ‘절차도 제대로 못 지키는 국회’라는 수치스런 지적을 받았던 국회는 김 의장의 잘못된 이번 행태로 부끄러움의 목록을 또하나 더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