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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서재/독립운동

연재 시작하는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

[길을찾아서] ‘임정은 나의 고향’…항일역사 낱낱 증언할터
연재 시작하는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


김자동(82) 선생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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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나이 팔순을 지나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세상을 헛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겨레>가 2008년 창간 20돌 기념 기획으로 연재를 시작한 원로들의 회고록 ‘길을 찾아서’의 여섯째 화자인 김자동(82·사진) 선생은 뜻밖에도 연재를 시작하는 감회를 이렇게 털어놓았다. “그동안 독자로서 ‘길을 찾아서’를 즐겨 읽었지만 막상 그 주인공이 되고 보니 의욕만큼 할 이야기가 없을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는 뜻이다.

하지만 공식 직함인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 회장’과 ‘임정의 품 안에서’란 회고록 제목에서 짐작하듯, 그는 1919년 3·1운동의 독립 열망을 안고 중국 상하이에서 창설된 ‘임정’과 삶의 궤적을 같이하며 근현대사의 주요 장면을 체험한 ‘마지막 산증인’이다. 새해는 일제 강점 100년이기도 해 그의 증언은 한층 의미가 깊다.

임정본부서 활약 부모아래 나고자라
민족일보 조용수사건 진상규명위 활동 “역사교육 점점 소홀…기록할 의무느껴”

그는 28년 가을 임정 본부가 있던 상하이시 프랑스 조계 안의 한인촌에서 태어났다. 대한민국 선포 10년 만에 임정 요인들의 집안에서 첫 후손 출생이었던 만큼 그는 제목 그대로 ‘백범 선생의 품에 안겨 놀며’ 자랐다. 당시 이미 작고한 할아버지 동농 김가진 선생은 대한제국 시절 김홍집 내각에서 ‘홍범 14조’를 직접 기초한 개화파 관료이자 3·1운동 직후 비밀결사 조선독립대동단을 조직한 총재로서 일제의 감시를 받자 일흔넷의 고령으로 상하이로 망명해 임정의 고문을 지냈다. 아버지 성엄 김의한은 임정의 실무요원이자 김구 선생의 비서로 일했고, 어머니 수당 정정화는 임정 요인들의 식사 뒷바라지에서부터 독립운동 자금 모금까지 헌신해 ‘임정의 잔 다르크’로까지 불리었다.

조선 후기 세도가로 꼽힌 안동김씨 후손인 김 회장 집안의 독립운동 헌신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으로 칭송받아왔다.(<한겨레> 2009년 8월14일치 참조)

46년 5월 부모와 함께 피란민 귀국선을 타고 서울로 환국할 때까지 그는 임정 청사를 따라 상하이~항저우~전장~창사~광저우~류저우~치장~충칭 등지를 떠돌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남의 나라에서 나라 없는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타향살이가 고달프지 않을 리 없었지만 국내에서 겪어야 했을 일제의 식민압제에 비하면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덜 위축된 소년기를 보냈던 셈이 아닐까. 물론 결코 편한 시간도 아니었지만.”

또래의 식민세대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본말’을 할 줄 모를 정도로 ‘특이한’ 환경에서 자랐기에 그동안 줄곧 기록으로 남길 것을 권유받았지만 그때마다 손사래를 쳤던 그가 이제 어렵사리 붓을 든 이유는 분명하다. “국사 과목마저 없어질 지경으로 역사교육이 날로 소홀해지고 심지어 왜곡되고 있어 임정을 비롯한 선열들의 항일투쟁사와 민족의식을 보고 들은 대로나마 남겨둘 의무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이명박 정부가 2008년 5월 ‘대한민국 건국 60년 기념사업회’를 출범시킴으로써 “3·1운동과 임정의 법통을 부인하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30년이나 지워버리는 우를 범했다”고 개탄했다.

김 회장은 <한겨레>와도 각별한 인연이 있다. 한겨레신문사 초대 사장과 회장을 지낸 청암 송건호 선생과는 6·25전쟁 직후 서울대 동창이자 54년 <조선일보> 외신부 기자로 함께 일한 ‘30년 지기’였다. 88년 창간 주주로 참여해 한때 <한겨레> 지국을 맡아 운영하기도 했다.

61년 창간 3개월 만에 박정희 쿠데타 군부에 의해 폐간당한 진보적 일간지 <민족일보> 기자로 일했던 그는 조용수 사장 처형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민족일보사건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이후 사업을 하던 그는 2004년 9월 임정기념사업회를 창립했다. 1990년대 초 오스트레일리아계 웨스트팩은행 노조위원장으로 200일 넘는 파업을 이끌었던 둘째딸 김선현(50·오토 대표)씨가 사업체를 이어받아 기념사업회 활동을 후원하고 있다.

그는 “을사늑약 100돌의 해에 뒤늦게나마 ‘본연의 업’에 매진할 수 있어 다행스럽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1월4일치부터 연재될 그의 회고담 정리작업은 조부의 일대기 <동농 김가진전>(2009년)과 모친의 자서전 <장강일기>(원제 녹두꽃·1998년)를 출판한 학민사의 김학민 대표가 함께 한다. 
<글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