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권침해 뿌리는 빨갱이 탄압논리”
[이사람] 4년 임기 마친 김동춘 진실화해위 상임위원
“가해자와 피해자로,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관계자 1만명의 증언을 읽었죠. 제가 아마 한국에서 가장 많은 증언을 들은 사람 중 하나일 겁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집단희생규명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있었던 김동춘(50·사진) 성공회대 교수(사회학부)는 지난 4년 동안의 활동을 이렇게 회상했다. 진실화해위 출범과 함께 상임위원으로 임명됐던 김 교수는 10일 4년여의 임기를 마쳤다.
진실화해위에 접수된 사건 1만1025건 가운데 75%(8161건)는 한국전쟁 때 군경에 의해 학살당했던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으로, 김 교수가 이를 담당했다. 당시 민간인 학살 규모는 30여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학살 당시, 죽은 사람 수를 세기 위해 가해자들이 귀를 자를 때, 살아남기 위해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았던, 귀 잘린 할머니의 모습도 봤다고 했다. 그는 반세기가 지나서야 국가가 진상규명에 나선 것에 대해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희생자와 가해자 모두 숨지기 전이라 아주 늦지 않은 시점에 이뤄져 다행”이라고 평했다.
김 교수는 한국전쟁기의 학살은 친일문제, 전후 인권침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평했다. 그는 “좌우와 무관하게, 일제 시절 독립운동 경력을 가진 사람 가운데 3분의 2는 친일 경력을 가진 군경의 명령권자에 의해 학살당했다”고 말했다. 학살은 훗날 ‘인권침해의 뿌리’가 됐다. 학살의 주체인 사상 검사와 방첩부대(CIC·국군기무사령부의 전신), 경찰 사찰계는 ‘빨갱이는 고문하고 죽여도 된다’고 생각했고, 그 논리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과거사 정리를 ‘사회적 치유의 과정’이라고 불렀다. “‘빨갱이’라는 ‘주홍글씨’는 피해 당사자뿐 아니라 ‘정부에 반대하면 이렇게 된다’는 학습효과를 퍼뜨려 우리 사회를 곪게 했습니다. 과거사 정리는 피해자 구제만이 아니라, ‘병든 사회’를 치유하고 ‘잘못된 행동은 언젠가는 밝혀진다’는 교훈을 통해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 길입니다.”
김 교수는 과거사 정리가 ‘일회성 이벤트’가 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적절한 보상과 전국적 규모의 위령사업, 국민들에게 계속해서 교훈을 줄 ‘과거사연구재단’의 설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학살 현장을 ‘평화교육의 장’으로 보존할 것을 제안했다.
“한국의 과거사 정리가 한계는 있지만, 돈과 인력을 투입해 스스로 과거사를 정리한 사례는 세계에서 유일합니다. 이런 점을 이명박 정부가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 그는 최근 보수 성향의 인물이 진실화해위 위원장으로 임명된 것과 관련해 “그간 진실화해위에 비판적이었던 사람도 위원으로 와서, 보고서들에 적힌 사실을 보고 점차 공감하게 되는 걸 지켜봤다”며 “남은 사건을 잘 마무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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