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신문 2009-12-26일자 사설
대화 외면하고 야당만 압박하는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이 준예산을 마련해 내년 1월1일 비상국무회의를 통해 의결할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 예산안이 연말까지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전체 예산의 1.2%에 불과한 4대강 예산을 문제삼아 예산안 처리를 하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4대강 사업 예산 대폭 삭감을 주장하는 야당을 비판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대통령한테 있다. 우선 그는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예산 대치’의 해법으로 제시한 여야 대표와의 3자회동에 응하지 않고 있다.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풀 생각은 하지 않고 야당한테만 책임을 떠넘기고 압박하는 모양새다. 그는 “서민생활이 여전히 어려운 지금 예산안이 처리되지 않는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할 일은 외면하고 남 탓만 하는 그의 발언에선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공무원 봉급을 볼모로 삼으려는 이 대통령의 모습도 보기에 좋지 않다. 그는 “준예산으로 갈 경우 공무원 봉급 지급도 전체적으로 유보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준예산 집행 때 헌법이나 법률에 의해 설치된 기관이나 시설의 공무원에게는 봉급을 지급할 수 있지만 훈령으로 설치된 기관의 공무원들에겐 지급하기 어렵다는 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한 발언이다. 이 발언에 대해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지낸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조차 “법률에 의해 주도록 돼 있는 공무원 월급을 정부가 마음대로 주고 안 주고 하는 것은 안 된다”고 반박했다.
이 대통령의 태도는 여러모로 온당하지 않다. 만에 하나 예산안의 연내 처리가 어렵다고 예상되더라도, 문제를 요란스럽게 부풀리기보다는 혼란과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차분히 준비하는 게 정부 수반으로서 올바른 태도다.
대치정국의 해법은 이미 나와 있다. 한나라당의 소장파 모임인 ‘민본21’이 제안하는 대로 4대강 사업 예산을 놓고 야당과 실질협상을 하면 된다. 민본21은 보의 개수와 규모, 준설량까지 협상 의제로 삼을 것을 당 지도부에 요구하고 있다. 지난 17일 남경필·권영세 의원 등 한나라당 중진들도 ‘대운하 의심 예산 삭감’을 요구했다. 여야는 29~31일 사흘간 국회 본회의 일정을 잡아놓았다. 협상할 시간이 없는 게 아니다.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 지도부는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꾸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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