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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사기,실정백서/총괄,인사

청와대 ‘메가톤급 의제’ 동시 강행…여의도정치 황폐화

청와대 ‘메가톤급 의제’ 동시 강행…여의도정치 황폐화
‘정치실종’ 방정식 짚어보니
4대강·세종시·노동법·파병동의안 등 “일정표대로” 밀어붙여
여당안에서도 “선후·경중 없이 쏟아내 뒷감당 어렵다” 불만
지방선거 의식한 조급증…“대통령 과업 강박증이 무리수 불
한겨레 2009-12-10


4대강예산χ⁴+세종시χ³+노동조합법χ²+아프가니스탄파병동의안χ=? 꼬리에 꼬리를 물고 쏟아지는 대형 ‘갈등 이슈’를 놓고, 여의도 정치가 풀기 어려운 고차방정식처럼 점차 꼬여가고 있다. 가짓수가 여럿이다 보니, 야야 간 갈등의 전선도 광범하게 확대되면서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서는 “처리용량을 넘어서는 대형 갈등 이슈의 홍수로 정치권이 교통체증에 걸린 도로처럼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 최근 청와대가 주도적으로 밀어붙이는 이들 쟁점은 하나같이 사회적 파장이 만만찮은 굵직굵직한 대형 정책과제들이다. 그만큼 사회·정치적 갈등 요인이 높고, 합리적 해결을 위해서는 많은 논의와 토론,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한 사안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들 대형 이슈들을 한꺼번에 정치권에 쏟아낸 뒤 일방통행식 처리에 몰두하고 있다. 우윤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6년 동안 국회의원 하면서 정부·여당이 이렇게 갈등과 반대가 많은 초대형 정책들을 한꺼번에 쏟아낸 적은 없었다”고 한숨 쉬었다. ‘무더기’ 초대형 정책을 둘러싼 갈등과 이에 따른 값비싼 정치·사회적 비용, 졸속 처리의 후유증을 우려하는 것이다.

이런 청와대의 밀어붙이기에 대해서는 한나라당 지도부와 친이 직계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들 핵심 의제들을 무리 없이 입법으로 뒷받침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원내대표단의 한 의원은 “야당이 극렬 반대하는 4대강 예산 하나도 제때 처리하기 쉽지 않은데, 청와대는 세종시 수정, 행정구역 개편, 아프가니스탄 재파병, 노동조합법 개정 등 메가톤급 대형 의제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어 뒷감당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수시로 교감하는 친이 의원들도 청와대의 정치력과 정무 기능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한 친이 직계 의원은 “청와대에 여러 현안 중 선후 경중을 따져 이를 관철할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건의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다”며 “세종시든, 4대강이든 정말 중요한 어젠다를 선택하고, 나머지는 야당에 양보하며 주고받기식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이런 무리수는 중도실용 노선으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오른데다, 임기 3년차에 뭔가를 이루지 못하면 안 된다는 이 대통령의 조급증이 겹치면서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의 친이 직계 한 재선 의원은 “역대 대통령들이 집권 3년차에 접어들면 항상 역사적 소명의식을 언급하며 반대를 무릅쓰며 무리하게 일을 벌이는데, 이 대통령도 그 길을 밟고 있다”며 “대통령은 먼 미래 역사가의 평가에 기대는 선지자가 아니라, 현실 정치세력인 야당과 반대파, 국회를 상대로 타협하고 절충하는 정치인이라는 걸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권의 한 인사는 “이 대통령은 갈등 이슈들을 정치적 문제로 보기보다는 반드시 수행해야 할 ‘과업’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며 “마치 여러 공사장에 현장소장을 임명하듯, 정운찬 총리에겐 세종시, 임태희 노동부 장관에겐 노조법을 맡기고 ‘마감시간을 지켜라’고 주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내년 6월 지방선거 실시라는 정치일정도 중요한 고려 요인인 것으로 보인다.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이후 이 대통령의 국정 추진력이 약화될 수 있고, 집권 후반부로 갈수록 차기 대선 국면이 본격화하면서 역시 국정 장악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지금 힘이 있을 때’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야당이 무기력하기 때문에 차라리 한꺼번에 몰아쳐 해결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청와대가 협상엔 관심 없고 현안을 일괄적으로 밀어붙이기에 골몰하는 것에 대해 “슈퍼마켓이 문 닫기 전 상품들을 한꺼번에 ‘떨이’로 판매하면서도 한 푼도 깎아주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유주현 신승근 황준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