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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서재/내가쓴글

짱돌 들고 바위 치기

홍세화 선생의 칼럼입니다.

그들과 우리의 비대칭성이란 말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비대칭성이 대칭성으로 전환될때 진정성있는  대화와 타협에 의한 건강한 관계가 성립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비대칭성 극복을 위한 짱돌로 바위치기에 나서야 한다는 말 공감합니다./나눔과키움

* 저는 오늘부터 아래 문장을 제가 쓰는 글의 끝부분 상용어구로 사용할 겁니다.

반드시 투표에서 심판해야 한다. 1950년대 자유당, 이승만정권에 대해 그렇게 했듯이, 한나라당, 이명박정권에게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국민의 역사적인 심판이 있어야 한다.

못살겠다, 바꿔보자!
힘 내 라,  민주주의!


참고기사---------------------------------------------------------------------------------------------------------------------------------------

출처: 한겨레신문 2009년6월24일자 홍세화칼럼

달걀로 바위 치기’라고 한다. 과정을 무시하고 오로지 결과만을 중시하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짱돌도 던지지 말라고 하는 말이다
.

하지만 낙숫물에 파이지 않는 돌 없고 나무뿌리에 틈을 열지 않는 바위 없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회적 약자들이 바라는 사회 변화는 확실성이 아닌 가능성에 근거해야 한다는 점이다. 강력한 힘을 가진 자본과 국가권력이 사회 변화의 확실성을 용인할 리 없다. 사회 변화의 확실성에 집착할 때 자칫 우리에게 남은 가능성마저 놓치는 위험이 따를 수 있다. 우리는 ‘바위는 반드시 부서진다’는 확실성이 아니라 ‘바위도 부서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하고 행동해야 한다.

확실성이 아닌 가능성, 그것은 ‘더 좋은 세상’이 아닌 ‘덜 추악한 세상’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아직 전쟁을 벌이지만 그렇다고 좌절에 빠지면 안 되는 까닭은 이나마 인간적인 세상을 살고 있는 것도 비록 소수의 사람들이지만 비관적 여건과 전망 속에서도 덜 추악한 사회를 끊임없이 모색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는 삼성 재벌과 함께 추악한 자본주의의 실상과 만나고 있다. 세금 16억원으로 거대 기업을 편법 승계해도, 노동자들이 백혈병에 집단적으로 걸려도, 죽은 사람 명의를 도용하여 노동자들의 위치를 추적해도 삼성 재벌은 거대한 바위와 같아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삼성 엑스(X)파일이 불거지고 김용철 전 법무팀장의 양심선언이 나와도 이 거대한 바위에는 작은 균열도 생기지 않는다.

이명박 정권의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일자리의 신성화’를 통한 ‘노동자 죽이기’라는 모순을 낳고 그들이 살린다는 민생은 용산참사나 쌍용자동차의 현장이 증언한다.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로 그칠 일이 아니다. 반사회적 자본의 추악한 실상을 지나쳐선 안 되기 때문이다. 기득권자들은 ‘반기업 정서’를 들먹이지만 ‘반사회적 자본’에 순응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 반사회적임을 실토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10여년 전 프랑스 쉬드(SUD, 연대단결민주) 노조를 방문한 민주노총 간부가 한국 노동운동이 처한 어려움을 설명하면서 삼성 재벌의 무노조 관철을 예로 들었다. 그러자 쉬드 노조의 여성 활동가는 대뜸 이렇게 물었다. “그러면 60만명이 넘는다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삼성 제품을 보이콧하지 않나요?” 우리는 대꾸를 하지 못했다. 우리의 의식은 사회 변화의 가능성이 우리에게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기획·주입된 것일까? 아니면 ‘달걀로 바위 치기’라는 주술에 걸린 것일까?

삼성 재벌이 <한겨레> 광고를 보이콧한 지 20개월째 된다. 한겨레 독자들이 삼성 제품을 보이콧하지 않는 비대칭성은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 삼성의 제품을 조직 노동자들이 별생각 없이 사들이는 비대칭성과 하나의 뿌리에서 만난다. 아무리 강력한 자본주의일지라도 노동자들이 파업으로 일하기를 거부하거나 소비자들이 보이콧으로 소비를 거부하면 작동할 수 없다. 13년을 기다린 끝에 나온 대법 판결 결과에 낙담하는 대신 우리가 짱돌(보이콧)을 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 후퇴를 지적하는 일에서 멈출 게 아니라 비폭력 직접행동에 나설 일이다. 선거일까지 두 손 놓고 기다릴 수 없다. 언소주(언론소비자 주권 국민캠페인) 운동은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설령 당장 효과를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거대한 장벽을 극복하기 위한 디딤돌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이 비대칭성을 대칭성으로 바꾸어 나가야 하는 것을 말하는 또 다른 기사 있습니다.


미래를 위한 일상적 실천의 정치/김평호 단국대교수
"대한민국은 공부 중…MB가 고맙고 또 고맙구나" 

"5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에 조문을 표했다면, 또 지금도 그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면, 그 중의 절반, 아니 절반의 절반에 해당하는 우리들이 조·중·동을 끊어버리고 좋은 신문을 읽는다면, 삼성제품과 서비스 대신에 다른 회사의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작든 크든 힘닿는 대로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의 건강한 시민·사회단체에 회원으로 가입하거나 후원한다면, 에버랜드에 놀러가는 대신에 올 여름에는 아이들과 함께 역사 체험으로 봉하 마을에 간다면, 공정무역, 공정거래와 같이 착한 기업과 윤리적 생산자들의 물건을 찾아 착한 소비를 한다면, 단체들은 또 단체들대로 서로서로의 연대를 넓혀간다면, 또 이외에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는 생활정치의 항목을 실천한다면, 그리고 혼자보다는 여럿이 한다면, 거대한 장벽은 이미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이고 2009년의 정치 학습은 이미 긍정적인 결론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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