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서재/역사 썸네일형 리스트형 가쓰라-태프트 밀약 우리나라의 주체적인 역량과 능력이 없거나 자각하지 못할때 강대국으로 둘러쌓인 한반도 문제의 국제화로 나타난 결과가 한민족에게는 엄청난 불행과 수난, 고통이었다는 과거 역사의 교훈이다. / 나눔과키움 가쓰라-태프트밀약 [密約, Katsura-Taft Secret Agreement] 1905년(광무 9) 7월 29일 미국과 일본이 비밀리에 체결한 협약. 일시 1905년 7월 29일 장소 도쿄 목적 일본의 한국 보호권 인정 해당국가 미국·일본 본문 미국의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특사인 육군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일본의 총리 가쓰라 다로[桂太郞]가 도쿄[東京]에서 은밀하게 맺은 협정이다. 이 비밀협약은, 미국이 필리핀을 통치하고, 일본은 필리핀을 침략할 의도를 갖지 않으며, 극동의 평화유지를 .. 더보기 사진으로 다시보는 6.10 민주항쟁 더보기 이덕일 주류 역사학계를 쏘다 ④ 대방군이 황해도에 있었다? 중국 삼국시대 유주(왼쪽 점선 안)와 대방군(오른쪽 점선 안) 지도. ‘중국 역사지도집 제3집(삼국, 서진시대)’에 실린 것으로, 위나라가 평안남북도는 물론 황해도의 대방군까지 지배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중원에서 촉, 오와 싸우기에도 전력이 부족하던 위나라가 고구려 남부에 대방군을 운영했다는 것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한사군 중에는 진번·임둔군처럼 설치 25년(서기전 82) 만에 낙랑·현도군에 편입된 군이 있는가 하면 대방군처럼 낙랑군의 남부 지역에 다시 설치된 군도 있다. 대방군은 요동의 토호였던 공손강(公孫康)이 3세기 초반에 낙랑군 남부에 세운 것인데, 현재 주류 사학계는 황해도와 한강 이북 지역으로 비정하면서 과거에는 한사군 진번군의 고지(故地)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낙랑군의 위치를 평남 일대라고 .. 더보기 이덕일 주류 역사학계를 쏘다 ③ 낙랑군은 어디 있었나 낙랑, 한반도에 있었다’ 쓴 중국 사서 하나도 없어 2천년전 한서 “베이징 일대에 위치” 후한서 “낙랑=옛 조선, 요동에 있다” 사기 “만리장성 시작되는 곳에 자리” 낙랑군에 있었다는 갈석산. 현재 하북성 창려현에 있는데 진시황과 조조가 올랐던 유명한 산이다 일제 식민사학자들은 한사군의 낙랑군이 평안남도와 황해도 북부에 걸쳐 있었고 그 치소(治所:낙랑태수부)는 대동강변의 토성동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중국은 이 논리에 따라 한강 이북을 중국사의 강역이었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동북아역사재단의 누리집은 “위만조선의 도읍 부근에 설치된 낙랑군 조선현의 치소가 지금의 평양시 대동강 남안의 토성동 토성”이라고 이들의 논리에 동조하고 있다. 일제 식민사학과 중국 동북공정, 그리고 한국 주류 사학계는 낙랑군의 위치에 .. 더보기 이덕일 주류 역사학계를 쏘다 ② 한사군의 미스터리 중국이 밑돌 깔고 일제가 못박은 ‘평양’의 한사군 현재 주류 사학계는 일제 식민사학의 구도에 따라 평양 일대를 한사군 낙랑군 지역이라고 비정하지만 일제도 처음부터 그렇게 주장했던 것은 아니다. 조선통감부가 도쿄대 공대의 세키노 다다시(關野貞)에게 평양의 석암동을 비롯한 전축분(벽돌무덤) 조사를 의뢰할 때만 해도 ‘고구려 고적조사 사업’의 일환이었다. 이런 ‘고구려 유적’이 ‘한(漢) 낙랑군 유적’으로 바뀌게 된 데는 도쿄대 도리이 류조(鳥居龍藏)의 역할이 컸다. 일제, 식민지성 강조하려 한사군을 조선사 시작점으로 조작 중국 기록 미심쩍은데도 실증사학 미명아래 한국사 정설로 도리이 류조는 만철(滿鐵)의 의뢰로 남만주 일대에서 ‘한(漢) 낙랑시대 고적조사 사업’을 수행했던 인물이다. 남만주 유적조사를 마친 .. 더보기 혼돈 속의 한국, 어디로 가나 혼돈 속의 한국, 어디로 가나 : 경제위기와 신뢰상실, 이명박 정부의 '이중고 "국민들 지나친 비관론 빠져 우파에 몰표 해법은 우경화 아닌 직접 참여 민주주의 아시아의 몇몇 국가들은 국제통화기금에 의존하지 않고서 경제위기를 극복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아시아 연대기금’을 창설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국 정부는 중국과 일본의 지지를 기대하면서, 이 기금에 240억 달러를 분담할 것을 약속했다. 그런데 한국의 이명박 정부는 사회 불안과 북한과의 긴장 고조, 신뢰의 추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2월 취임 당시 “세계화된 대한민국”을 약속하며 1인당 국민소득을 연 4만 달러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다. 그로부터 12개월 뒤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는 그도 미처 알지 못했다. .. 더보기 3·1운동 1년, 촛불 1년 / 한홍구 지난 5월2일은 촛불집회가 시작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었다. 청계광장에 앉아 함성을 외치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봄비 내리는 광장은 쓸쓸하기만 하다. 이상화가 살아있다면 아마도 ‘빼앗긴 광장’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노래했을 것이다. 1년이 되어서인지 촛불에 대해 이런저런 평가가 나온다. 촛불에 덴 자들이 해대는 뻔한 얘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1년 전 즐겁게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 속에서도 촛불의 후유증에 대한 여러 가지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한목소리로 외쳐댔건만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고,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 사람들의 마음을 몹시 상하게 한 모양이다. 다시 이런 판이 벌어져도 나가지 않겠다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촛불은 성공한 운동이었나? 나에게도 몇몇 기자가 전화.. 더보기 이덕일 주류 역사학계를 쏘다 ① 식민사관과 노론사관 한겨레 신문창간 21주년 맞아 생각해 볼만한 시리즈 물을 기획했군요. 저로서는 공감이 가는 주제이고 어젠다라 생각합니다. 여러 사람들이 같이 보고자 저의 브로그를 통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현재진행형 역사 왜곡 뒤엔 ‘쓰다·이병도 짙은 그림자’ "우리 시대의 ‘문제적 역사학자’인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 주류 역사학계에 도발적인 도전장을 던진다. 이 소장은 현재 역사학계의 주류 사관이 식민사관과 노론사관에 젖줄을 대고 있다고 주장한다. 학계에서 정설이나 통설로 굳어져 있는 기존 이론체계를 뒤집어엎겠다고 한다. 한겨레는 앞으로 10여차례에 걸쳐 수요일치 지면에 이 소장의 글을 실을 예정이다. 한겨레가 이 소장의 주장을 수긍하거나,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소장의 발언이 불씨가 돼, 우리 역사.. 더보기 우리땅 "간도", 이대로 멈추고 말 것인가? 앞으로 4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돌아오는 9월4일은 간도를 빼앗긴 지 꼭 100년이 된다. 우리 세대에서 ‘되찾아야 할 우리의 땅’ 간도(間島)를 찾지 못하면 영원히 잊혀지게 될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에게 9월4일은 국치일로 남게 될 것이다. 간도(間島)란 무엇인가. 갈수록 낯설게 느껴지는 이 곳은 지금 중국이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의 땅이며 우리의 영토이다. 1712년 백두산 정계비문에 근거한 조선도 중국은 더하다. 중국은 한반도의 통일을 염려해 일찌감치 영유권 분쟁의 가능성이 있는 동북3성(요녕성·길림성·흑룡강성) 지역 단속에 나섰다. 북한이 붕괴될 경우 이 지역으로 넘어오는 난민들로 인해 한민족의 근거지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또 간도지역이 독립운동의 기지가.. 더보기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