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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사기,실정백서/정치,경제

화해·통합을 말하기 전에 선행돼야 할 것

화해·통합을 말하기 전에 선행돼야 할 것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후 떠오르는 화두가 있다. 사회·정치적 화해와 통합의 필요성이다. 이에 대해서는 고인을 추모하는 시민들이나 진보·보수 진영 사람 모두 공감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도 화해·통합이 지역·이념·빈부격차 등으로 분열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는 데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한 조건이 따라야 한다. 본질적 문제는 그대로 남겨둔 채 상처를 서둘러 봉합하는 식은 진정한 화해·통합의 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사건 발생 후 이명박 정권은 정치보복이 초래한 결과란 비판에 당혹스러워하면서 고인에 대한 애도 발언 말고는 말을 몹시 아끼고 있다. 이 사건이 행여 ‘제2의 촛불’로 번지지 않을까 민심의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 같다. 필시 이 정권의 심경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보수 신문들의 적극적인 논조다. 이 신문들은 “성숙하고 화합적인 분위기에서 차분하게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내자”거나 “노 전 대통령이 유서에서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고 했듯이, 흥분하기보다 차분하고 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의 투신이라는 미증유의 사건을 단지 화해와 통합이라는 명분으로 그냥 덮어버리자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덮으려고 해서 덮어질 일도 아니다. 사건은 평범한 필부도 아닌, 1년 몇개월 전까지만 해도 대통령을 지낸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다. 그 충격과 파장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한국사회가 상식이 통하고 정상적인 사회라면 애도와는 별개로 최소한 전직 대통령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

이 정권은 화합과 용서를 말하기 전에 그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정치적 타살이라는 데 많은 국민이 공감하는 이유부터 깊이 생각하기 바란다. 그러고 나서야 화합과 용서를 말할 자격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 정권의 모습은 이미 화해·용서와 거리가 멀다. 서울 대한문 앞 임시분향소를 에워싼 전경 버스들은 무엇을 의미하나. 예의 공권력을 동원해 그저 사건이 잠잠해지기만을 고대하는 모습 아닌가.
경향신문사설 2009-5-25


진정한 화해는 용서를 구하는 데서 시작해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열기가 온 나라로 퍼지고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현 정권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화해와 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민심에 겁먹은 한나라당이나 현 정권 인사들은 낮은 톤으로 이를 주장하는 반면, 보수언론은 한층 적극적으로 이를 설파한다. “그분이 다 안고 가셨는데 이젠 싸움 그만해야”라는 ‘자갈치 아지매’의 말을 1면 통단 제목으로 뽑는가 하면, 노 전 대통령이 편히 잠들 수 있게 하자거나 국민장이 엄수되도록 각계가 협조해야 한다며 한결같이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고 한 노 전 대통령의 유서 내용을 강조한다.

어느 누구도 화해와 통합에 반대하지 않는다. 노 전 대통령도 자신의 죽음이 또다른 갈등과 혼란을 야기하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화해와 통합 주장에선 진정성을 찾기 어렵다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진정한 화해가 가능하려면 가해자들의 진솔한 사과가 선행돼야 한다. 흑백차별 정책으로 극심한 분열과 갈등을 겪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불행한 역사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가해자들의 진솔한 사과와 피해자들의 용서를 가능하게 했던 ‘진실·화해위원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해자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채 피해자에게 화해만 요구하는 것은 부도덕하다.

독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지적처럼,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현 정권의 ‘몰이 사냥’을 견디다 못한 선택이었다. 촛불에 덴 정권이 그를 배후로 의심해 정치적 보복에 나섰고, 그 하수인인 검찰은 내부에서조차 범죄 성립이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무리한 수사를 강행했다. 보수언론은 여과 없이 혐의사실을 공표하며 그를 구석으로 밀어붙였다. 외국 언론의 눈에조차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증오로 비칠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오늘의 비극을 낳은 자신들의 책임에 대해선 한마디도 않은 채 ‘근거 없이 검찰 책임론을 운위하거나 정당한 보도를 비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경제위기와 북한 핵위기 속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라는 비극을 맞은 우리 사회가 분열을 극복하고 통합을 이루는 것은 긴요한 일이다. 그러나 통합을 만들어낼 일차적 책임은 현 정권과 집권층 및 그들을 뒷받침하는 보수언론에 있다. 다른 의견을 철저히 배제하고 억압하면서 대결을 조장해온 정책기조를 전면 전환하고, 노 전 대통령의 가족은 물론 용산참사처럼 정권의 폭압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위무하는 일이 그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보수언론 역시 스스로를 겸허하게 되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 그런 통과의례도 없이 화해만 말하는 것은 두려움의 표현이거나 위선일 뿐이다
한겨레신문사설 2009-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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