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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서재/독립운동

나의 증조 할아버지 애국지사 "이건호"


이 건 호(李建鎬) 1885. 6. 5~1950. 9. 13 이명 : 一海

 

충남 부여(扶餘) 사람이다.

그는 1919년 6월 전협(全協)으로부터 대동단(大同團)의 결성 취지를 듣고 이에 찬동하여 동단에 가입활동하였다.


대동단은 3
・1운동 직후 한민족의 민족역량을 결집하여 민족적 대동단결과 실력양성을 표방하고 민족운동의 구심적 역할을 담당할 것을 목적으로 전협최익환(崔益煥) 등이 주도하여 결성된 비밀결사였다.


동단은 김가진(金嘉鎭)을 총재로 추대하여 황족
유림종교인상공인노동자청년군인보부상 등 전사회 각계층의 인사들을 규합하려던 조직으로서, 주로 각종 인쇄물의 배포 등을 통한 독립사상의 고취와 동단의 선전활동 및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대동단은 의친왕(義親王)을 상해로 망명시켜 망명정부를 세우고 제2의 독립만세시위를 추진하고자 하였다.


이때 그는 전협으로부터 대동단이 재정적 곤란에 처해 있다는 말을 듣고, 자금확보를 위해 당시 전라도 금구(金溝)에 거주하던 자산가 장현식(張鉉軾)을 전협에게 소개하여 재정적인 지원을 받게 하였으며, 이후 장현식과 함께 서울
전남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여 3,000원의 군자금을 모집, 대동단에 전달하였다.


이후 동년 7월 인쇄기계
용지 등을 매입하여 자신의 집에 영동활판소(永同活版所)라는 비밀 인쇄소를 차리고 이곳에서 정남용(鄭南用) 등과 함께 동단의 기관지인 <대동신보(大同新報)>를 제작발행하였으며, 또한 '기관(機關)'・'방략(方略)' 등의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문서를 인쇄하여 권헌복(權憲復) 등과 함께 서울일대에 배포하는 등 선전활동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활동을 펴던 중 그는 동지들과 함께 일경에 탐지
피체되어 1921년 3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8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음.

 

☞ 出典:『大韓民國 獨立有功者 功勳錄』 第 7卷, 國家報勳處, 1990年, pp.538~539.

 

判決文(1921. 3. 23 京城覆審法院)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229面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10卷 870~879面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14卷 366面

   東亞日報(1920. 4. 1)

 

출처 :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정보시스템 독립운동가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