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창간 21돌 특집
21C, 중국의 것인가
■ 한·미·일 전문가 분석
“독재 체제서 기술혁신 한계…민족주의 너무 강해”
‘지역강국’ 예측…위안화 기축통화 가능성 ‘부정적’
‘중국은 미국을 대신해 세계 최강대국이 될 수 없다.’
세계를 뒤흔드는 중국을 바라보는 외부의 눈은 냉정했다. <한겨레>가 중국의 미래에 대해 질문한 한국·미국·일본의 대표적 중국 전문가들은 만장일치로 ‘현재로선 중국이 미국을 대체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막강한 경제력과 급속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가 실종된 현실이 최대의 한계로 꼽혔다.
고로기 이치로 간다외국어대교수(현대사·중국사회)는 “최대 장애물은 민주주의 결여”라며 “현재의 일당독재 체제에서는 기술 혁신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존 아이켄베리 미국 프린스턴대 석좌교수(국제정치)도 “중국이 세계적 강대국이 되려면 19세기 영국, 20세기 미국처럼 국내 경제를 개방하면서 세계 경제를 이끄는 민주적 국가라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리처드 부시 동북아정책연구센터 소장은 며 “중국은 미국에 도전하거나 동아시아 지역질서를 전복시키는 데 따를 위험을 이해하고 있다”며 “중국은 (세계 최강대국 대신) 지역강국이 되길 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있는 지금 어떤 국제질서가 펼쳐질지에 대해, 아이켄베리 교수는 “중국이나 유럽 미국, 러시아 등 여러 강대국이 경쟁하는 다극체제가 아니라, 미국이 계속 리더십을 가지면서 강력해진 다른 국가들이 협력자로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다원적 체제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소프트파워 역시 현재로선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고로기 교수는 “최근 중국이 유교 등 전통으로 돌아가려는 분위기가 있지만, 자유, 민주, 인권 등 세계가 공유하는 보편가치와는 크게 동떨어져 있다. 일당독재체제에 민족주의도 너무 강하다”고 말했다. 부시 소장은 “중국의 정치경제모델은 다른 나라에게 매력적이지 못하며, 중국은 국제질서를 만들거나 국제적 이슈나 의제를 설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두가지 문제를 지적했다.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될 가능성이 낮다는 결론도 일치했다.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중국 정치)는 “현재 국제 외환시장을 바꿀 수 있는 중국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약 2조달러의 중국 외환보유고 안에는 미국의 핫머니들이 포함되어 있고, 보유 달러의 상당 부분을 이익이 적은 미국 국채를 매입하는 데 쓰는 ‘달러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 도쿄/류재훈 김도형 특파원, 류이근 김순배 기자
■ 아이켄베리 교수 - 존 아이켄베리 미국 프린스턴대 석좌교수
헤게모니 쥐기엔 국제문제 해결능력 미약
“중국은 글로벌 헤게모니를 쥐길 원하지만, 아직 그런 지위까지 오지 않았다. 중국의 군사력은 미국의 10%밖에 안된다. 경제적으로는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지만, 세계경제의 엔진이 될 상황은 아니다.”
존 아이켄베리 미국 프린스턴대 석좌교수는 중국의 힘을 평가하면서, 경제적 부분과 나머지 측면을 엄격히 구분했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세계가 중국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경제적인 면에서 중국의 글로벌 리더 역할은 점점 커질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헤게모니를 쥐려면 국제사회의 경제, 국제안보 등 이슈에서 강력한 힘을 확보해야 한다.” 그는 또, “중국 스스로도 현재 글로벌 헤게모니 역할을 수행하려고 하지 않는다”며 “중국은 국내 경제 발전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고, 주변국의 중국에 대한 우려를 줄이려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은 어느 정도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중국은 갈수록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향후 20년 동안 계속 성장한다면 주요 핵심 국가들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현재 미국과 같은역할을 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사람들이 중국을 믿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세계의 리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민주주의 때문에 가능했다. 중국이 보다 전통적인 민주주의체제로 급진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일본이나 유럽 등이 시스템을 바꿔 중국의 리더십을 따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G2나 ‘차이메리’카’ 론은 등은 과장된 것인가?
“경제위기로 중국과 미국이 협력해야만 된다는 현실이 각인됐다. 중국은 자본을 갖고 있고, 고도성장하는 나라다. 하지만 중국은 성장하려면 미국과 유럽과 거래하며 수출을 하는 게 필요하다. 양쪽이 돈을 빌리고 수출하는 균형을 맞추면서 서로 이익을 얻는 체제다.”
-5~10년 뒤 세계질서는?
“좀더 많은 나라가 중요해지는 다원주의 체제가 될 것이다. 중국이나 브라질 인도네시아 인디아 러시아 등이 중요한 행위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역할은 여전히 필수적일 것이다. 미국은 세계 어디에나 친구를 갖고 있는 세계에서 대단히 독특한 지위에 있다. 하지만 더 많은 나라가 세계체제를 관리하는 데 주주로 참가하는 다원주의 체제가 될 것이다. 중국과 인도 한국 등이 세계은행이나 IMF 등에서 영향력을 키우게 될 것이다. 미국은 중국과 기후변화 등에서 더 적극 협력해야 될 것이다.”
-국제사회는 더 안정될 것인가? 혼란스러워질 것인가?
“더 혼란스러워 질 것이다. 활발한 외교와 협력이 필요해질 것이다. 미국은 다른 나라가 아프간이나 기후변화 등에서 지원은 하지않고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도 중요해질 것이고 그에 맞는 역할분담을 미국은 요구할 것이다. 또 새로운 지위에 맞게 국제기구 등에서 투표권 행사 등을 요구하면서 더 복잡해질 것이고, 중국 인도 브라질 등이 안보리 상임이사회 등에서 투표권을 요구하는 등 국제기구의 권한 행사 등이 개편될 것이다. 유럽과 미국은 잃고 중국과 아시아는 얻게 될 것이다.”
-중국은 세계를 이끌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중국은 민주주의와 개방적 정치체제가 필요하다. 중국은 국내 경제를 개방하면서 세계경제를 이끄는 민주적 국가라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영국이 19세기, 미국이 20세기에 한 것이다. 중국이 얼마나 현재 국제질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느냐, 얼마나 현 국제질서를 바꾸기 원하느냐는 선택에 달렸다. 어떤 수준까지 ‘베이징 컨센서스’를 만들어낼 것이냐 등에 달렸다. 중국은 현 체제에서 강해질 것인가, 서구 중심의 국제질서를 바꿔서 강해질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 고로기 이치로 교수 - 고로기 이치로 간다외국어대 교수
개혁 통해 국제사회와 모순점 줄여야
중국이 세계적 강대국이 되려면 ‘정치 민주화’라는 해독약이 필요하다는 게 고로기 이치로 간다외국어대 교수(중국사회, 현대사)의 결론이다.
고로기 교수는 중국의 민주주의 결여는 정치, 경제, 사회적 발전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이라고 분석한다. “일당독재 체제 아래 중앙에서 지방에 이르기까지 관료 조직이 경제이권을 독점한 결과” “민간기업이 성장할 수 없고, 국유기업은 관료기구이므로 기술혁실을 하지 않아고도 살아남을 수 있어 독자적 발전의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국제질서가 형성될 것인가.
“중국의 개혁이 성공할지, 실패할지에 달려 있다. 민주화가 성공하면 국제사회와의 모순은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 민주·인권·자유 등 공통의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개혁이 실패할 경우 결과가 두렵다. 높은 성장율이 유지될 수 없다면 실업문제가 악화되고 사회가 불안정해질 것이다.빈부격차가 더 커지면 극좌세력이 대두할지도 모른다. 외교면에서도 국제사회와 조화를 꾀하려고 하는 현재의 ‘화평굴기’ 전략에서 크게 달라져 강경하게 변할 가능성도 있다.”
-5~10년 뒤 세계 국제질서는 안정과 혼란중 어느 쪽일까.
“5~10년 안에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금융위기로 비관론이 들끓고 있지만 미국 모델이 끝난 것은 아니다. 반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는 세계 3위의 규모이지만 인구는 13억으로 국민 전체를 먹여살리는 부담이 크다. 중국은 국내 구매력이 약해 수출을 하지 않으면 성장이 유지될 수 없으므로 세계 경제가 축소되면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중국시장에 기계, 전자부품, 화학제품, 자동차 등을 팔아 이윤을 얻어온 일본과 한국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중국이 미국을 대체할 소프트 파워를 가지고 있는가
“중국의 소프트 파워는 약하다. 미국식 모델도 패권주의와 국내 빈부격차 등 문제가 있지만, 중국식 모델도 매력적이지 않다. 중국의 경제력도 아직 자율적이지 않다. 독자적 기술력, 브랜드 파워가 부족하고 대외의존도도 너무 높다. 정치적 민주화가 진행되지 않는다면 경제 성장을 지속하는 것도 어렵고 소프트 파워도 얻을 수 없다. 그 점을 공산당 정권이 알고 있다 해도 기득권을 포기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위안화가 국제기축 통화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아직 아니다. 국제 기축통화가 되려면 중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신용도가 높아지는 게 중요하다. 중국의 경제제도는 발전 단계로 불안정 요소가 크다. 복제 상품 범람에서 보듯 신용사회도 생겨나지 못했다. 상하이가 홍콩과 같은 국제금융센터가 되지 못하는 것은 정보가 자유롭게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위안화가 국제통화가 되려면 완전한 변동환율제로 이행해야 하는 데, 중국 정부는 위안화 강세가 수출에 불리하다고 판단해 주저하고 있다. 중국에는 아직 구조적 문제와 변수가 매우 많다. 중국의 실력을 냉정하게 지켜보는 게 중요하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 이희옥 교수 -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
아시아에서 영향력 확대하려 할 것
“중국은 아직 강대국보다는 발전도상에 있는 대국에 가깝다.”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중국정치)는 새로운 세계질서에 대해 “비록 미국의 패권이 약화됐지만, 중국도 현실적으로 일초다강(一超多强·패권국 미국과 여러 강대국) 체제를 인정하고 있다”며 “중국이 희망하는 국제질서는 ‘국제관계의 민주화’가 이루어지는 다극체제의 출현이며, 중국은 적어도 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전략은 보다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5-10년 뒤 세계질서에 대해 이 교수는 “적어도 미국의 대중국 봉쇄정책이 효과적으로 기능하기 어려운 상황일 것”이라며 “양국은 ‘책임 있는 이해당사국’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고, 일본의 쇠퇴, 대만 문제 해결이 전제가 된다면 미-중간 전략적 동반자관계 또는 전략적 공동통치(condominium)의 가능성이 초보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런 새로운 국제질서는 “한반도의 안보 환경에 순기능적인 역할을 할 것이지만, 동맹의 편익이 약화되는 상태에서 국가 이익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봤다.
-중국이 세계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소프트 파워를 가질 수 있나?
“중국은 (미국 중심의) ‘워싱턴 컨센서스’를 대체할 수 있는 ‘베이징 컨센서스’에 기초한 중국모델을 추구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델은 제3세계가 따라갈 수 있거나 수출할 수 있는 보편적 모델이 아니다. 중국의 소프트 파워는 역설적으로 경제적 여건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 현재 중국의 수입구조는 중간재-자본재를 수입해 이를 다시 수출하는 구조여서 시장 개방도가 매우 떨어진다. 따라서 중국의 소프트 파워는 최종 소비재 시장으로 등장해 타국이 중국에 매력을 느끼도록 하는 가운데 문화적 가치, 역사적 유산 등을 전파하는 방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중국의 한계가 큰 데도 G2 논의가 유행인 이유는?
“G2라는 평가는 중국과 미국의 국력이 비대칭적이지만,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잠재력과 국제사회의 위상을 적극적으로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언론에서 주요·신흥 20개국(G20) 회담을 ‘후진타오-오바마회의(胡奧會)’라고 부른 것도 위기극복을 위한 중국의 협력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위안화가 새로운 기축통화가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중국의 파키스탄에 대한 경제 지원, 대만-홍콩, 일부 상하이협력기구 국가들과의 무역에서의 위안화 결제, 금 보유량 확대, 국제통화기금(IMF) 외화특별인출권(SDR)을 새로운 준비통화로 하자는 요구 등은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하려는 목표라기 보다는, 달러패권 체제를 약화시키고 달러체제에 의해 위안화 가치가 일방적으로 조정되는 것을 피하려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세계질서 속에서 한국은 어떤 전략이 필요한가?
“한국은 미국-중국의 경쟁 속에서도 협력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가정할 필요가 있다. 미-중간 갈등이 신냉전을 초래할 가능성은 낮다는 의미다. 미-중 갈등을 전제로 한 동북아균형자론의 유용성은 적지만, 한미동맹의 편익구조 속에서 중국에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즉 한미동맹이 강화되면 중국의 대 한반도 접근도 강화되고 우리의 국가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발상은 순진하다. 한미관계와 한중관계를 별도의 트랙으로 작동시키면서 그 교집합을 확대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국제질서 변화에 대응하는 한국적 전략의 유연성을 확대해야 한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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