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맴도는 날파리들
정남기(한겨레신문 논설위원) 2010-07-16일 [아침햇발] 칼럼
말을 잘 먹이려고 마구간 관리인을 뒀더니 말이 더 수척해졌다’는 옛말이 있다. 관리인을 두면 자기 몫을 챙기고 빼돌리는 데 여념이 없어 정작 말은 굶주리게 된다는 얘기다. 오늘날도 다를 것이 없다. 권력 주변의 날파리들이 물 좋은 자리와 이권을 챙기기 시작하면 국정이 흔들리고 나라살림은 기울게 된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서 ‘비선라인’으로 불리는 측근들의 인사전횡이 곳곳에서 터져나온다. 새로울 것도 없다. 누구나 알고 있던 사실을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하다. 공개된 자료만 봐도 현 정권의 지역편중과 인사전횡은 심각한 수준이다. 장차관의 43%가 영남 출신이고, 청와대·국정원·국세청 등 권력기관의 요직도 영남 출신이 거의 절반이다. 그뿐 아니다. 측근과 공신들의 자리 마련을 위해 공기업은 물론이고 포스코·케이비금융 등 민간기업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기관장이 바뀌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은행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현 정부 출범 때만 해도 부행장 이상 임원 16명 가운데 수도권 출신은 7명, 영남 출신은 2명이었다. 지금은 임원 15명 가운데 영남 출신만 9명이다. 전체의 60%다. 나머지 6명 가운데 3명은 고려대 출신이다. 영남 출신까지 합하면 고려대 출신은 5명에 이른다. 두해 만에 특정 지역, 특정 학교 출신들이 경영진을 싹쓸이한 꼴이다. 어디 우리은행뿐이겠는가. 공기업과 정부 지분이 있는 회사들 대부분이 마찬가지다.
‘권력이란 원래 그런 것이야’, ‘이전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한도가 있는 법이다. 민간기업에까지 손을 뻗치고, 정부에 비판적인 인물들을 찍어 직장에서 내쫓고 회사까지 뺏는 데서는 그 대담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비선라인의 청와대 측근들은 자신의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공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불러놓고 인사와 자금협찬 등을 마음대로 주물렀다.
문제는 아직도 챙겨야 할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역대 어느 후보보다 대규모 캠프를 차렸다. 정책자문단에 참여한 교수만 400여명이었고, 뒤에서 도운 사람을 합하면 자문교수만 1000여명에 달했다. 여기다 영남, 고려대, 소망교회, 서울시 인맥까지 생각하면 챙겨야 할 사람의 수는 추측조차 하기 어렵다. 자리를 둘러싸고 내부 싸움이 안 날 수 없다. 이런 식의 논공행상과 인사전횡은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필연적으로 부정과 비리로 진화한다. 어렵게 자리를 잡았으니 한몫 챙겨야 한다고 생각할 사람이 왜 없겠는가.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당쟁의 원인으로 잘못된 과거제도를 들었다. 30년 동안 2330명이 과거로 뽑히지만 자리는 중앙과 지방을 통틀어 800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나마 300명은 시험 없이 들어가는 자리다. 남는 자리는 500개밖에 안 된다. 그는 “이로운 구멍은 하나뿐인데 그 구멍을 뚫고 들어오는 사람이 8~9명이나 된다. 따라서 서로 패가 갈려 붕당이 형성되는 것은 자연스런 형세”라고 말했다.
지금이 그런 꼴이다. 이명박 정권이 대선 때 논공행상을 다 하려 든다면 정권이 끝나는 날까지 자리다툼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 사이 능력 있는 인재는 밀려나고 국정은 뒤죽박죽 얽히게 된다. 이익은 “어진 선비를 구하지 못하는 임금은 있어도 얻을 수 없는 선비는 없다”고 했다. 임금이 인재를 찾아 등용하지 않는 것이 문제지 능력 있는 인재는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다.
중요한 것은 이 대통령이 측근과 공신 그룹으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 이들과 분명한 선을 긋는 일이다. 밀약이 있었다 해도 할 수 없다. 나랏일이 먼저다. 집권 후반부가 부정과 비리로 얼룩지지 않게 하려면 그나마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한해만 지나면 이대통령 자신도 측근들을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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