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 ‘버블 붕괴’ 시대 진입했나
시사저널 | 선대인 |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 | 입력 2010.07.16 11:58 ⓒ시사저널
시장과 기존 주택 시장이 동시에 침체로 접어든 데 이어 최근에는 주택 가격이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까지 '대세 상승'을 부르짖던 상당수 부동산 정보업체 관계자들이나 언론들도 이제는 이구동성으로 주택 시장 위기를 합창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부동산 버블 붕괴는 여전히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우선 한국의 주택 시장이 어떤 국면에 와 있는지부터 보자. 서울 한강 이남 11개 구의 아파트 실질 가격 추이를 나타낸 < 도표 1 > 을 보자. 많은 이들이 집값을 생각할 때 명목 가격 추이만 생각한다. 그래서 집값은 늘 오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물가 수준을 반영한 실질 가격 지수 추이를 살펴보면 사정은 사뭇 달라 보인다.
국민은행이 주택 가격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86년 이후 한국은 크게 두 차례 부동산 버블기를 겪었다. < 도표 1 > 을 보면 서울 강남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상승(1987~91년 5월) → 하강(1991년 6월~1998년 11월) → 상승(1998년 12월~2006년 말) → 하강(2007년 초~ 최근)하는 파동을 그리고 있다. 즉, 부동산 버블과 버블 붕괴가 반복되는 것이다. 2009년 상반기에 집값이 국지적으로 반등했다고는 하나, 주택 가격의 장기 파동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2차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는 초기 과정에서 나타나는 미약한 흐름일 뿐이었다.
그런데 국민은행 주택 가격 지수는 부동산 중개업소들의 호가 위주의 지수이다. 집값이 오를 때는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만, 집값이 내릴 때는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토해양부 실거래가 흐름을 보면 이미 대세가 하락 흐름에 들어 있다는 것이 명확히 드러난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호가가 아닌 국토부 실거래가를 바탕으로 수도권 수천 개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가격 패턴을 산출해보아야 한다. 그 결과는 아래 < 도표 2 > 와 같다. 이를 보면 호가와 실거래가의 차이가 상당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실거래가 기준으로는 2006년 말에서 2007년 초의 고점과 비교해 서울 강남 3구의 경우 이미 11.6%, 수도권 도시의 경우 25~30%가량이 떨어진 상태이다. 명목 가격으로 이만큼 하락했는데, 이를 실질 가격으로 환산하면 훨씬 더 많이 떨어진 셈이 된다. 2006년 이후 국내 누적 물가 상승률은 약 15%에 이른다. 따라서 아파트 실질 가격으로는 강남 3구의 경우 26.6%, 수도권 도시들의 경우 40~45%가량 떨어진 셈이 된다. < 도표 2 > 의 실거래가 패턴 추이는 올 4월 초까지 신고된 아파트 실거래가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미 석 달가량 지난 현재 시점에서는 하락 폭이 그보다 훨씬 더 크다고 보아야 한다.
거래량 감소가 집값 하락보다 1~3분기가량 선행해
이번에는 주택 가격 못지않게 중요한 통계인 거래량 지표를 살펴보자. 아파트 거래량은 2006년 이후부터 집계되었으므로 그동안 그 이전의 거래량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1996년 이후 아파트 거래량 추이를 자체적으로 추정해보았다. < 도표 3 > 은 가계 부채와 아파트 거래량의 상관관계 함수를 이용해 한국은행이 발표한 가계 부채 증감 추이에 주택 가격 수준을 감안해 아파트 거래량을 추정하는 방식으로 작성한 것이다. < 도표 3 > 에서 2006년 이전 부분은 바로 이렇게 도출한 추정에 의한 거래량 추이이다. 거래량 지표를 보면 1차 폭등기에는 전국적으로 집값이 뛰면서 전국 아파트 거래가 활발했다. 2차 폭등기에는 수도권에서만 집값이 뛰었고, 이미 집값이 많이 뛴 상황이어서 거래량이 1차 폭등기보다 많지 않았다. 하지만 2006년 하반기의 거래량은 1차 폭등기를 능가하는 것으로 이때 가격과 거래량이 단기간에 폭증했음을 알 수 있다.
2차 폭등기 이후인 2007년부터는 거래량이 급감하면서 국토해양부 실거래가가 점진적으로 하락했다. 2003년 하반기부터 2004년까지 주택 시장이 침체되면서 집값이 일정하게 떨어졌는데 아파트 거래량은 2003년 1분기부터 급감했다. 거래 침체가 지속되면서 빚을 내 산 사람들이 몇 분기 후부터 초조한 마음에 집값을 낮춰 내놓았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이런 현상은 2006년 폭등기 이후 거래량 감소에 따른 집값 하락이 2007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것과도 마찬가지다. 이로 미루어볼 때 거래량 감소가 집값 하락에 1~3분기가량 선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는 어떨까? 2008년 말 집값 급락 후 집값이 죽 빠지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부동산에 사활을 건 현 정부는 막대한 부동산 투기 선동책을 동원해 억지로 집값을 떠받쳤다. 그렇게 해서 늘어난 거래량이 1·2차 폭등기보다 매우 미미한 수준임을 도표를 보면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식으로 거래량 침체가 2분기 이상 지속된다면 가격은 가파르게 하락할 것으로 판단된다. 최근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급락하는 것은 그 전초전이라고 보면 된다.
가계들의 은행 대출 연체율 급등…건설업계는 줄도산 위기
이런 가운데 올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 이후 기준금리 인상 등 출구 전략이 본격화된다면 어떤 상황이 연출될까? 사상 최저 수준의 금리와 경기 부양을 위한 유동성이 급증한 상태에서도 이 정도였다. 이미 한국은행은 7월9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금리가 오르면 가계 부채가 7백40조원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주택 가격의 하락 폭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일시적으로는 주택 가격이 폭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올해 2분기에 은행의 대출 연체율이 급등하고 있다고 한다. 부실 채권을 털어내기 위해 대규모 상각과 매각을 단행했는데도 가파른 급등세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부동산 거품을 호가로 아무리 떠받치려 해도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실제 거래 가격이다. 이미 수도권 주요 도시에서 고점 대비 20~30%씩 집값이 떨어진 곳이 수두룩하고, 빚 부담을 버티지 못하는 가계들부터 무너지면서 은행 연체율도 급등하게 되는 것이다.
가계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동안 부동산 붐에 편승해 무리하게 사업을 펼쳐온 건설업계의 줄도산 위기로 번지고 있다. 1백20조원이 넘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고리로 금융권의 부실 채권은 더욱 늘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미 저축은행의 경우에는 PF 대출 부실이 심각해져 정부가 다시 공적 자금 투입에 나섰다. 우리은행을 시발점으로 하여 시중 은행에서도 PF 대출 부실 여파가 불거지고 있다.
지금 언론에서 제대로 거론되지 않고 있지만,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기업들도 시설 운영 자금 등의 명목으로 빚을 내 2005년 이후 부동산에 투자한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중소기업 대출은 4백45조원에 이른다. 관련 세부 통계가 없어 정확한 실상 파악은 어렵지만, 이 가운데 적지 않은 대출이 부동산 관련 대출로 추정된다. 그 근거로 중소기업의 자금 수요가 경기 변동에 연동하기보다는 부동산 시황에 연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사실 이들 기업에 대한 부동산 대출은 이미 2008년 말부터 부실해지고 있었지만, 금융 기관들이 추가 대출을 일으켜 연체를 막아주고 있었다. 그 가운데 수면 아래에서 부실 채권이 늘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2012년 이후에는 인구 감소와 2기 신도시의 입주 물량 대량 공급이 이미 가라앉고 있는 주택 시장을 짓누를 가능성이 크다. 2010년대 한국의 주택 시장은 저출산·고령화의 충격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시기이다. 저출산·고령화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급격히 진행되는 만큼 그 충격 또한 어느 나라보다 깊고 클 것이다.
보통 10~20년 정도의 장기 파동을 그리는 주택 시장의 사이클은 주식시장처럼 짧지 않다. 2000년대에 부동산 거품이 심하고 오랜 기간 지속되었던 만큼 거품 해소 기간도 그만큼 심하고 오래 지속될 것이다. 그것이 순리이다. 그런 주택 시장 사이클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은 겨우 머리에서 어깨 정도로 내려온 수준이다. 일시적 기복은 있겠지만 집값은 아직도 장시간에 걸쳐 발바닥까지 내려갈 일이 남아 있다. 따라서 '집값이 싼 지금이 집을 살 타이밍'이라며 역발상을 주문하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 지금의 역발상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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