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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친일문제: 우리 시대의 불행한 정신상황에 대하여 * 한반도평화연구원(KPI)의 칼럼을(게재일 : 2009.12.10) 소개합니다 친일문제: 우리 시대의 불행한 정신상황에 대하여 박명림(KPI 연구위원, 연세대학교 교수) * 차례 - 사실과 의견 - 진실과 관용 - 정의의 이행 또는 이행적 정의 - 보편적 인간문제로서의 친일문제와 과거(사)문제 - 이 시대의 참된 영웅을 기다리며 민간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의 (전3권) 간행과, 정부의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의 (종합. 전25권) 발간을 계기로 친일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언제나 그렇듯 한국사회에서 친일문제는 가장 뜨거운 민족·반민족 논쟁 구도의 핵심의제인 동시에, 현금의 논의지형이 보여주듯 지극히 전도된 이념문제이기도 하다. 21세기에 아직도 지난 세기 식민주의 유산과 과거극.. 더보기
이덕일 주류 역사학계를 쏘다 ④ 대방군이 황해도에 있었다? 중국 삼국시대 유주(왼쪽 점선 안)와 대방군(오른쪽 점선 안) 지도. ‘중국 역사지도집 제3집(삼국, 서진시대)’에 실린 것으로, 위나라가 평안남북도는 물론 황해도의 대방군까지 지배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중원에서 촉, 오와 싸우기에도 전력이 부족하던 위나라가 고구려 남부에 대방군을 운영했다는 것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한사군 중에는 진번·임둔군처럼 설치 25년(서기전 82) 만에 낙랑·현도군에 편입된 군이 있는가 하면 대방군처럼 낙랑군의 남부 지역에 다시 설치된 군도 있다. 대방군은 요동의 토호였던 공손강(公孫康)이 3세기 초반에 낙랑군 남부에 세운 것인데, 현재 주류 사학계는 황해도와 한강 이북 지역으로 비정하면서 과거에는 한사군 진번군의 고지(故地)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낙랑군의 위치를 평남 일대라고 .. 더보기
이덕일 주류 역사학계를 쏘다 ② 한사군의 미스터리 중국이 밑돌 깔고 일제가 못박은 ‘평양’의 한사군 현재 주류 사학계는 일제 식민사학의 구도에 따라 평양 일대를 한사군 낙랑군 지역이라고 비정하지만 일제도 처음부터 그렇게 주장했던 것은 아니다. 조선통감부가 도쿄대 공대의 세키노 다다시(關野貞)에게 평양의 석암동을 비롯한 전축분(벽돌무덤) 조사를 의뢰할 때만 해도 ‘고구려 고적조사 사업’의 일환이었다. 이런 ‘고구려 유적’이 ‘한(漢) 낙랑군 유적’으로 바뀌게 된 데는 도쿄대 도리이 류조(鳥居龍藏)의 역할이 컸다. 일제, 식민지성 강조하려 한사군을 조선사 시작점으로 조작 중국 기록 미심쩍은데도 실증사학 미명아래 한국사 정설로 도리이 류조는 만철(滿鐵)의 의뢰로 남만주 일대에서 ‘한(漢) 낙랑시대 고적조사 사업’을 수행했던 인물이다. 남만주 유적조사를 마친 .. 더보기
이덕일 주류 역사학계를 쏘다 ① 식민사관과 노론사관 한겨레 신문창간 21주년 맞아 생각해 볼만한 시리즈 물을 기획했군요. 저로서는 공감이 가는 주제이고 어젠다라 생각합니다. 여러 사람들이 같이 보고자 저의 브로그를 통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현재진행형 역사 왜곡 뒤엔 ‘쓰다·이병도 짙은 그림자’ "우리 시대의 ‘문제적 역사학자’인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 주류 역사학계에 도발적인 도전장을 던진다. 이 소장은 현재 역사학계의 주류 사관이 식민사관과 노론사관에 젖줄을 대고 있다고 주장한다. 학계에서 정설이나 통설로 굳어져 있는 기존 이론체계를 뒤집어엎겠다고 한다. 한겨레는 앞으로 10여차례에 걸쳐 수요일치 지면에 이 소장의 글을 실을 예정이다. 한겨레가 이 소장의 주장을 수긍하거나,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소장의 발언이 불씨가 돼, 우리 역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