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형 불법사찰, 어물쩍 넘어갈 순 없다
한겨레신문사설 2010-06-26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을 상대로 벌인 불법 사찰의 내막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블로그에 올린 이명박 대통령 비난 동영상은 하나의 꼬투리였을 뿐, 총리실의 주 표적은 옛 여권 정치인에 대한 옭아매기였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총리실이 동원한 각종 무리수는 탈법이나 위법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다. 법과 절차 따위는 깡그리 무시한 초법적 행태의 연속이었다.
피해자 김아무개씨의 말을 종합하면, 총리실은 그가 같은 고향 출신 정치인(이광재 당시 민주당 의원)과 촛불집회 등에 후원금을 제공했으리라는 의혹을 갖고 내사를 시작했다. 이 전 의원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라고 아무리 호소해도 막무가내였다고 한다. 총리실은 김씨의 회사를 불법적으로 압수수색한 것으로도 모자라 회사 직원들까지 불러 조사를 벌였다. “정치자금을 밝히지 않으면 회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할 것”이라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들이 스스로 수사기관 행세를 한 것도 어처구니가 없는데 ‘수사기법’마저도 저질스럽기 이를 데 없다.
총리실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방식도 통상적인 절차와는 거리가 멀다. 경찰청이나 서울경찰청 등을 경유하지 않고 곧바로 일선 경찰서와 직거래를 했다. 이 수사가 권력형 ‘청부수사’였음을 드러내는 방증이다.
이번 사건의 파문이 날로 커지는데도 총리실은 문제의 공직윤리지원관에 대해 대기발령만 냈을 뿐 아직 조사도 착수하지 않았다. 당사자인 총리실이 조사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이런 미적지근한 태도로 진상규명이 될 리 없다. 게다가 문제의 공직윤리지원관은 현 정부 최대 실세 그룹들이 포진한 지역 출신이다. 애초 내사가 시작된 게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기획사정이 시작될 무렵인 점을 고려하면, 사건의 의미와 파장은 더욱 커진다. 과연 공직윤리지원관이 독단적으로 내사를 결정했는지, 당시 총리실장을 포함한 윗선은 보고를 받지 않았는지, 청와대 등 정권 핵심 실세들의 묵인·방조는 없었는지 등 밝혀야 할 내용이 수없이 많다.
이번 사건이 소름끼치는 이유는 어느 누구나 이와 같은 날벼락을 맞을 수 있다는 데 있다. 표적을 정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권력, 개인의 삶이야 망가지건 말건 나몰라라 하는 정부, 그들 밑에서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고통스럽고 절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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