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 김구, 노무현, 그리고 이명박
오마이뉴스 2009.12.10
<<호치민은 여러가지 면에서 김구와 닮았다. 어릴 때부터 독립 운동에 매진했고, 사심이 적었다. 유교적인 가치관을 가슴 밑바닥에 깔고 있었다는 점도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호치민이 제국주의를 몰아낼 수단으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데 반해, 김구는 사회주의 역시 외세의 일종으로 보아 배격했다는 점이다. 프랑스와 미국, 러시아, 중국 등 세계를 떠돌며 국제감각을 익힌 호치민이 실용주의적 관점으로 사회주의를 채택한 반면, 한국과 중국에 시야가 국한돼 있던 김구는 일체의 외세를 배제하고 우리 민족만의 독립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이상주의자에 가까웠다.
호치민이 한때 미국을 이용해 프랑스를 몰아내려고까지 했을 정도로 국제정치에 민감했던 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역할을 한 사람이 이승만이었다는 것은 통탄할 일이다. 이승만은 신탁통치안을 교묘하게 비틀어 '찬탁=공산주의'라는 프레임을 만들어내고, 이를 반공 세력의 결집 기회로 활용한다. 이어 반공의 깃발 아래 미국과 친일파, 지주들을 등에 업고 남쪽에서 권력을 잡았다. 이 때 형성된 극우 헤게모니는 군부독재와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지나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김구 선생을 존경하지만, 해방 공간만 생각하면 속이 쓰리다. 나는 지금 김구가 사회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을 아쉬워하는 게 아니다. 호치민의 실용주의와 국제감각을 말하는 것이다.
생전의 노무현은 이렇게 썼다.
"김구 선생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존경할 만한 사람은 왜 패배자밖에 없는가?'하는 의문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왜 패배했는가? 역사에서 올바른 뜻을 가진 사람은 왜 패배하게 되는가? 이런 질문은 '우리 역사에서는 정의가 패배한다'는 역설적 당위로 귀착되었고, 나는 그것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노무현이 만난 링컨>에서)
노무현 스스로도 '패배하는 정의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견처럼 보여 슬픈 대목이다. 노무현은 도덕적 수단(당정분리, 권력기관의 자율화)으로 우리 사회의 부도덕(지역주의, 수구언론)을 이기려고 했던 반(反)마키아벨리주의자였다. 그 불가능해 보이던 실험은 예상대로 패배했다.
노무현이 미처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김구는 단지 정의의 편이기 때문에 패배한 것이 아니다. 아까 말한 대로, 숨가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를 잘 몰랐거나 일부러 무시한 채 어떤 진공 상태의 이상만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상주의자로서 노무현의 패배는 민중들의 삶의 조건에 대한 실체적 관심보다는 일종의 당위로서의 정치투쟁(수구언론과의 싸움을 포함하여)에 치중함으로써 민중들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역사적 안목에 남달리 예민했던 노무현은 현실의 민중들이 원하는 것을 포착하는데 상대적으로 서툴렀다.
이명박은 노무현의 전도된(뒤집힌) 형태다. 역사에 무감하고 도덕에 무관심하다. 역사적으로 부도덕한 자들은 도덕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부도덕을 증명한다. 식언은 예사다. 그리고 자신이 특정 계급의 대표라는 사실을 기술적으로 숨기고 있다. 지지율이 떨어질만 하면 재래시장에 나가 떡볶이를 먹으며 서민 경제를 걱정한다.(이런 정치 쇼야말로 노무현이 가장 혐오했던 것이다) 그리고 신혼부부 보금자리 아파트 같은 기만적인(언발에 오줌누기라는 의미에서!) 술책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있다. >> 칼럼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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