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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기/좋은칼럼

신영철 대법관과 사법부를 위한 길

신 대법관과 사법부를 위한 길

대법원 대법정 입구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전횡으로부터 사법부 독립을 지키기 위하여 분투한 가인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흉상이 있다. 필자는 모든 판사의 꿈이자 사법부의 지도자인 대법관 및 그 후보들은 가인을 모범으로 삼아 그 어떤 권위, 세력, 연고에도 좌우되지 않고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며, 후배 판사들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방패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퇴임 후에 고액연봉 변호사로 개업하는 것에는 불만이 있었지만, 법복을 입고 있는 동안만큼은 ‘사도(使徒) 법관’이라 불리는 김홍섭 판사를 사표로 삼아 매사에 정정당당하게 처신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신영철 대법관 사태는 이러한 순진한 믿음을 깨뜨렸다. 신 대법관은 유력한 대법관 후보였던 서울중앙지방법원장 재직시 촛불시위 관련 재판을 특정 성향의 판사에게 ‘몰아주기’ 식으로 배당하였다. 이는 그가 법원 소속 판사에 대한 성향 분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어 그는 집시법에 대한 위헌제청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현행법에 따라 신속히 재판하라는 전자우편을 판사들에게 보냈다. 이는 사법행정상 필요한 업무 지시의 범위를 넘어 사실상 유죄 판결을 내리라는 요청으로, 법관의 독립을 명백히 침해하는 행위였다.

현재 전국의 단독판사회의, 특허법원과 일부 고등법원의 배석판사회의에 참석한 판사들이 신 대법관의 “용기와 희생”을 촉구하고 있다. 이 판사들의 행동은 좌와 우, 진보와 보수와는 무관한 것으로, 재판의 독립과 사법부의 권위를 지키려는 충정의 소산이다. 그러나 그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버티고 있다.

필자로서는 신 대법관의 속마음을 알 수가 없다. 현재 자신이 처한 곤경을 일부 극우단체와 보수언론들이 말하듯이 “좌빨” 판사들의 “음모”이자 “하극상”이며 자신은 “희생양”이라고 생각하며, 사퇴하지 않는 것이 사법부를 수호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번 소나기를 피하기만 하면 6년 임기를 채우고 명예롭게 퇴임하여 법조계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인가. 그가 대법관의 자리에 있는 한 사법부 내부의 혼란은 피할 수 없으며,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급속히 가중될 것임을 왜 외면하는가.

얼마 전 정부는 용산참사의 책임과 관련하여 김석기 경찰청장에게는 법적인 책임이 없다며 ‘김석기 지키기’에 나섰다. 이후 김 청장은 법적 책임은 없지만 자진사퇴한다는 수순을 밟았다. 신 대법관의 버티기는 마치 집권세력에게 ‘신영철 지키기’를 계속 해달라는 묵시적 구원요청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법관은 경찰청장보다 몇 배의 도덕성이 요구되는 자리이며, 그에 걸맞은 처신이 필요한 자리가 아니던가. 강준만 교수는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의 영역에서 후안무치한 자들이 성공했음을 지적하면서 “후안무치는 시대정신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세상물정 모르는 필자는 이러한 후안무치의 성공 법칙은 사법부의 영역에는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 믿었지만, 아닌가 보다.

신 대법관은 만약 김병로, 김홍섭 두 선배가 이런 상황에 처했더라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더 늦기 전에 깨끗이 물러나고, 이후 변호사로서의 모범적인 활동을 통하여 신뢰와 존경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자신과 사법부 모두를 위하는 길이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신 대법관에게,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 장군 우중문에게 보냈던 시를 보내고 싶다. “그대의 신기한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고, 오묘한 계획은 땅의 이치를 다했노라, 전쟁에 이겨서 그 공은 이미 높으니,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바라노라.”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한겨레신문2009-5-19


신영철, 보수언론, 그리고 법률가의 길
승수 변호사/제주대 교수/2009-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