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보기/Agenda

‘고용 국가 책임제’를 대안으로 고용개혁 논의 시작하자

* 아래글은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새사연)의 고용관련 심려깊은 연구보고서로 고용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시작의 전환과 방향을 제시해준다.

‘고용 국가 책임제’ 대안으로 고용개혁 논의 시작하자

[새사연 2009 의제결산①] 고용을 통한 성장전략 대안
2009-11-20 ㅣ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bkkim21kr@saesayon.org)

<기획의도>

민주주의 위기, 서민경제의 위기, 남북관계의 위기라는 표현이 문자 그대로 실감날 수밖에 없었던 2009년 위기의 한국사회가 저물어가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넘어선 대안을 찾고자 생활인의 힘으로 만들어진 새사연은 2009년 설립 4년차를 맞아 위기의 한국사회를 진단하고 그 속에서 구체적인 대안의 실마리를 찾고자 약 200여 편의 보고서를 발표하며 동분서주했다.

국민들이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회적 이슈를 파헤치며 나름대로 국민의 입장에서 문제 분석과 대안을 제시해온 새사연은, 올 한 해를 돌아보며 회원들과 국민들에게 말하고자 했던 의제가 무엇이고 어떤 대안을 생각하면서 현안에 대처해왔는지 종합적으로 결산해보고자 한다. 이는 2009년을 통틀어 200여 편의 보고서 각각에 스며들어있는 새사연의 일관된 대안 문제의식을 재확인해보는 취지이기도 하며, 2009년 이상으로 격변의 해가 될 2010년을 앞두고 우리 국민이 반드시 짚어봐야 할 대안적 문제의식을 공유하려는 뜻이기도 하다.

새사연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왔던 고용 대안과 금융 대안 논의를 시작으로 주요 의제를 차례로 검토해 보면서 독자들과 함께 새로운 사회를 향한 현실적인 상상력을 나눠보도록 하겠다.

1. ‘금융’에서 ‘고용’으로 이동하는 세계경제의 화두

2007년 겨울부터 두 해가 지나도 끝날 줄 모르는 글로벌 경제위기는 금융위기에서 시작되어 실물경제로 전이되었고, 글로벌 무역규모 축소로 확대되었다. 때문에 초창기 위기의 대처방안은 대다수 문제를 일으킨 금융부실을 해소하고 자기 조정 능력을 상실한 금융시스템을 규제하는 준비였다. 신자유주의 30년 동안 규제완화와 자유화를 만끽했던 금융시스템에 다시 재갈을 물리는 방안이 위기대처의 핵심 사안이었다.

미국을 위시한 각 국가의 적극적인 통화정책과 구제 금융, 경기부양책으로 파산 직전의 금융회사들이 회생하고 추락을 거듭하던 경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조짐을 보이면서 외형적으로는 경제위기 탈출 전망이 가시화 되었다. 이제는 조심스럽게 출구전략 논의가 국제회의 테이블에 오를 정도다. 동시에 금융에 대한 구제를 넘어선 규제대책도 조금씩 희석화 되어갔다.

자유낙하로 치닫던 세계경제를 극적으로 멈춰 세운 세계 주요 국가들이 금융회사의 부실을 국가로 이전시키고 경제 성장률 지표를 회복시키는데 일정 정도 기여를 했다. 하지만 여전히 국가의 힘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문제가 바로 악화되고 있는 고용상황이다. 경제위기의 진원지 미국에서도 월가의 연쇄 파산을 저지하면서 2009년 3분기 성장률을 플러스 3.5퍼센트(연율 기준)로 끌어올리는데 성공했지만 치솟는 실업률을 막지는 못했다. 2009년 10월 기준으로 10.2퍼센트의 실업률을 기록, 조만간 13퍼센트를 뛰어넘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비단 미국만이 아니다. 한국을 포함한 대다수 국가들의 고용전망은 여전히 매우 비관적이다. 이 때문에 2010년 경제위기 극복의 최대 과제가 바로 고용문제 해결일 것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경제위기 초반부터 지속적으로 고용위기의 중대성을 지적해왔던 새사연이 경기 지표가 바닥을 찍고 회복되기 시작하던 2009년 2분기 이후에도 경기회복을 비관적으로 생각한 주된 이유는 멈출 줄 모르는 고용사정 악화 때문이었다. 고용은 이제 글로벌 경제의 가장 첨예한 문제이자 2010년의 핵심 화두가 되고 있다.

2. 임계점에 이른 ‘일회성 단기 대응’

물론 경기추락을 막기 위해 각 정부가 금융부실 구제만 한 것은 아니었다. 대규모 재정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국가 재정을 풀어서 정부 투자를 감행하고, 민간 소비촉진을 지원했고 동시에 실업률 해소를 위한 재정투입도 진행되었다.

우리나라 역시 행정안전부 재정 1조 3000억 원을 풀어서 ‘희망근로’라는 이름으로 25만 개의 6개월짜리 일자리를 만드는 한편, 정부와 공기업, 중소기업 등을 통해 청년 인턴제 채용을 독려했다. 그 결과 마이너스 40만 명대로 추락할 것 같았던 취업자 증가수가 2009년 하반기 접어들면서 플러스로 반전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의 일자리 대책의 만료 시한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민간부문에서 이를 이어받아 고용을 창출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또 다시 정부가 나서서 단기 일자리 시한을 연장해야만 하는 딜레마에 빠진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2009년 11월로 끝나는 희망근로를 내년 상반기에 한시적으로 10만 명 규모로 연장하겠다는 고육책이 그것이다. 청년 인턴제도 규모를 줄여 좀 더 연장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문제는 내년 상반기가 지나면 고용이 예전 상황으로 회복될까 하는 점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 “1~2년 내 일자리 문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말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정치구호에 불과하다”고 고백할 정도로 상황은 비관적이다.

결국 ‘고용문제의 장기적 성격’과 ‘정부 고용대책의 단기성’이 불일치되면서 재정지출은 계속되고 있다. 고용사정이 나아지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 6월부터 시작된 ‘희망근로’의 효과를 벗겨낸 실제 취업자 증가수 감소가 우려했던 대로 30~40만이 되고 있다고 새사연이 강조했고, 정부대책이 종료되면 곧바로 고용문제가 수면위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했던 근거도 이 때문이다.

특히 짚을 점은 이명박 정부의 경제위기 대응책 가운데 가장 빠르게 형편없이 실패로 돌아간 정책이 바로 고용 정책이라는 사실이다. 4대강 사업 등 토목건설로 96만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첫 해인 올해에 일자리가 늘기는커녕 전 산업 부문 가운데 토목 건설에서 가장 크게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연초부터 노동시간 단축이 아닌 임금삭감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추진해 임금은 삭감되었지만, 실상 일자리는 늘지 않았다. 공기업을 동원해 추가 투자를 지시하고 각종 경기부양을 위한 자금 집행을 독려했으나 민간 기업보다 먼저 채용한 인턴을 해고하는데 앞장섰다. 1조 이상의 혈세를 투입해서 겨우 6개월 동안 노인들에게 낙엽 쓸고 등산로 정비하는 일을 주었을 뿐이다. 엄청난 비용낭비와 엄청난 비효율이다.

3. 고용문제, 더 이상 단순한 ‘고용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가 이토록 고용문제 해결의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단순히 고용회복이 경기회복보다 늦게 나타나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고용이 회복되지 않는 한 지속성을 지닌 경기회복도 있을 수 없고 경제위기도 끝날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가 경제위기의 종료를 자신 있게 말하기 위해서 해야 할 과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안이 바로 글로벌 소비회복이다. 지금 소비가 회복되려면 고용상황이 호전되어 노동소득이 결정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물론 신자유주의 30여 년 동안에도 노동소득은 제대로 개선된 적이 없다. 상위 1퍼센트의 소득은 비약적으로 상승했지만 대다수 국민들의 실질 노동소득은 제자리에 머물렀다. 그 동안에는 중국의 값싼 상품이 유입되고 물가가 낮은 수준을 유지했기 때문에 정체된 노동소득으로 버틸 수 있었다. 특히 정체된 노동소득 대신 금융 차입을 늘려서 소비를 하는 경제구조가 결정적으로 노동소득 정체를 은폐해왔다.

그러나 이번 경제위기로 차입을 통한 소비확대는 고사하고, 각국 국민들은 기존에 차입한 부채를 상환하고 저축을 늘리는 쪽으로 생활패턴을 급선회하고 있다. 이제는 안정적인 고용회복을 통한 노동소득 증대가 보장되지 않는 한 소비위축을 풀 수 있는 길이 막혀있다고 할 것이다. 고용문제는 더 이상 단순한 고용문제, 노동정책 문제,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닌 경제성장의 핵심 고리이다.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30년 동안 경험하지 못한 실업률의 급팽창은 경제구조 안에 잠재된 수많은 문제점들을 하나씩 수면위로 불거지게 하고 있다. 미국에서의 의료보험체계 문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의 시장화된 사적 의료보험체계는 직장을 잃으면 곧바로 무보험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근 실업자가 급팽창 하면서 2009년에만 해도 400만 명의 무보험자가 신규로 발생했다. 오바마 정부가 정권의 명운을 걸고 공적 의료보험체계를 세우려는 하나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에서도 그 동안 취약했던 고용 안전망의 문제가 이번 경제위기로 전면화 되고, 누적된 고용보험기금마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고용문제의 장기화가 경제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적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한국에서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 같은 자산시장이 성장률 지표 회복 이상으로 빠르게 반등하면서 과열을 걱정할 정도가 되자 고용시장이 얼어붙은 현실을 외면하는 최면효과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자산시장의 거품이 고용시장의 심각성을 은폐하고 있고 이 때문에 당연히 줄어들어야 할 소비지출이 오히려 평균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2010년 자산시장 거품이 꺼진다면 국민들은 자산 가치 하락과 동시에 고용문제의 심각성까지 떠안게 된다. 이 문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커질 가능성마저 있다.

4. 노동 유연화의 신화, 이제는 깨야 한다.

경제위기로 고용문제가 단순한 노동자의 일자리 문제, 정부의 노동 정책 범주를 넘어 국가 경제의 핵심과제로 등장했다면, 어디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잡아야 할까. 우선 대안 모색의 여지를 줄이고 있는 기존의 관념 틀부터 깨야만 가능한 모든 해법을 대안의 범주 안에 놓고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정책 당국자들이 국민들에게 주입한 가장 큰 고정 관념 틀은 두 가지다. 하나는 ‘노동 유연화가 불가피한 대세’라는 관념 틀이고, ‘고용 없는 성장이 불가피한 추세’라는 고정 관념이다. 그러나 이것은 따라야 할 대세가 아니라 깨버려야 할 나쁜 신화에 불과하다.

신자유주의는 ‘경제의 금융화’와 ‘노동의 유연화’라고 하는 두 축을 기반으로 자본의 수익실현 구조를 확대해온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금융위기로 한편에서는 신자유주의 금융 수익모델이 파산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 유연화로 인한 ‘고용불안 → 소득정체 → 차입에 의한 가수요 확대’라는 절대 지속될 수 없는 순환구조가 파산하기도 한 것이다. 특히 금융위기 이전까지 낮은 실업률을 유지하면서도 높은 생산성을 냈던 미국식 노동유연화 시스템은 한국에게 글로벌 스탠더드이자 교과서다. 하지만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식 노동유연화 시스템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실업률 증가속도와 장기 실업자 확대를 방치하며 고용에 취약한 모습을 드러냈다.

현재 글로벌 소비위축을 해소하고 생산-소비의 순환을 복원시켜내는 길은 두 가지 뿐이다. 하나는 지금처럼 고용 유연화를 지속시키면서 정체된 노동소득을 금융공급 확대 재개로 풀어서 소비를 늘리는 신자유주의적 ‘차입경제’를 복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자유주의적 고용 유연화 폐기를 전제로 고용보호, 나아가 고용 확대를 통해 소득을 안정시켜 생산과 소비의 선순환을 복원시켜내는 것이다. 물론 전자의 길이 대안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결코 진보적이라고 할 수 없는 폴 크루그먼 교수조차도 "보통 때라면 미국처럼 기업이 노동자들을 자유롭게 해고하고 채용을 할 수 있는 ’고용 유연성‘이 존재하는 풍부한 노동 시장도 일리가 있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보통 때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결론적으로 지금은 기존의 방식과 다른, 그 이상의 뭔가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는 진단을 내리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노동유연성 문제는 금년 연말까지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국정 최대 과제”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문제인식과는 얼마나 격차가 큰 것인가.

결국 노동 유연화는 고용 악화를 막을 정책이 아니라 실업대란을 부추길 정책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면서 노동 유연화 정책 폐지로부터 고용대안 모색을 시작해야 한다. 노동 유연화 폐지를 전제하지 않고 획기적인 고용대책을 말하는 것은 사실상 말장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기술 발전으로 고용 없는 성장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념 역시 고용불안을 정당화시켜주고 있는 노동 유연화만큼 깨야할 신화에 불과하다. 만약 노동 유연화가 아니라 기술 혁신과 발전이 고용 없는 성장을 가져왔다고 한다면, 자본주의 200여 년 동안 크고 작은 자동화와 기술적 혁신이 쉬지 않고 이어져왔기 때문에 적어도 자본주의 수백 년 역사를 통하여 고용상황은 체계적으로 악화되어야 했다.

그러나 20세기의 엄청난 인구팽창을 흡수할 정도로 그 동안 고용이 확대되어왔다는 것을 현실의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특별히 신자유주의에서 고용상황이 악화되었다는 것도 확인해주고 있다. 문제는 생산력과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체계적으로 노동시간을 줄여나가고 고용창출 효과가 높은 곳에 투자를 하기보다는, 단기적인 금융 수익창출에 몰두한 결과 고용 없는 성장이 인위적으로 확대된 데 있다. 또한 이런 방식의 수익창출을 사적기업이 추구하도록 국가가 방조했기 때문이다. 고용 없는 성장이 불가피 하다면 무엇 때문에 성장을 해야 하는 것인가. 기업을 위해? 아니면 국민을 위해? 고용 없는 성장이론이 노동유연화라고 하는 제도와 정책의 문제점을 슬그머니 기술혁신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점을 확실히 해야만 제대로 된 고용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5. 왜 고용을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가

신자유주의를 시장 지상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시장은 선이고 국가는 악’이라는 신념에 기초한 시장 지상주의는 특히 금융부문과 사회복지, 그리고 고용부문에서 두드러졌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 유연화란 고용에 대한 일체의 국가적 규제나 법적 보호 장치를 제거하고, 개별기업이 자유롭게 노동시장에서 인력을 쓰고 방출하도록 보장하는 ‘노동시장에서의 시장 지상주의’라고 할 수 있다.

고용에서의 시장 지상주의는 당연하게도 국민들의 취업 문제를 국가의 임무가 아니라 순전히 ‘개인의 책임’ 영역으로 돌리도록 했다. 실직자가 된 것은 개인들이 무능하거나 자신의 ‘스펙’을 높이는데 게을렀거나, 아니면 ‘눈높이가 너무 높아’서 생긴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되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러나 이번 금융위기에서 반드시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면 금융시장과 노동시장에서의 시장실패를 인정하고, 국가가 적극적으로 노동 시장을 규제하고 질서를 잡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향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될 ‘고용 없는 성장’ 가능성도 노동시장 유연화, 즉 노동시장에서의 시장 지상주의를 방치하는 국가들에서 특히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더 이상 고용이 ‘기업이 자율적으로 알아서 할 일’이 아닌 것이다. 고용 없는 성장은 어쩔 수 없는 숙명이 아니라 노동시장에서의 시장실패가 낳은 필연적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무분별한 노동시장 유연화에 대한 재규제 논의를 시작하고, 국가적인 고용전략 수립의 필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더 이상 취업과 고용이 개인의 책임 영역이 아니라 국가가 시장실패를 대신해서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국가의 책임 영역이 돼가고 있다.

우리 정부도 뒤늦게 고용문제가 단순한 ‘노동정책’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고용전략’ 수준으로 격상되고 있음을 깨닫고, 2010년 상반기까지 고용 친화적 정책설계와 추진 계획을 담은 ‘중장기 국가고용전략’을 내년 상반기에 수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임태희 노동부장관은 지난 11월 6일 “내년부터 노동부의 부처 이름을 고용노동부로 바꾸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며 “업무의 중점도 고용 문제에 두는 체제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여전히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를 정책기조로 하면서 동시에 국가적 고용전략을 수립하겠다는 자기 모순적 정책을 내걸어 그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고용의 수요/공급을 노동시장에 맡기면서 어떤 유형의 국가 고용전략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6. 고용 국가 책임제를 실시하기 위한 10대 정책 과제

새사연은 2006년에 창립하면서 펴낸 첫 번째 책에서 고용 국가 책임제를 이렇게 정의했다. “고용 국가 책임제는 헌법에 명시된 국민 기본권, 즉 일할 수 있는 권리를 국가적 차원에서 실현하는 것”이며 “고용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것은 재취업 시기까지 실제적으로 실직자의 생존 문제를 지원하며 취업 교육과 취업 알선까지 국가가 종합적으로 최종적인 책임을 맡자”는 것이다.(새사연, <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 169~170쪽)

특히 이번 금융위기로 처한 세계적인 실업확대와 고용불안의 장기화 가능성이야말로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라고 하는 노동시장에서의 시장 지상주의가 극적으로 실패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제는 최소한 노동시장 실패를 대신해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고용 문제에 개입하고 책임지고 고용문제 해결을 국가 경제사회 정책의 1순위로 놓아야 한다.

아울러 고용 없는 성장은 절대 지속 가능한 것일 수 없다. 오히려 지식기반 경제 시대에 다수 국민이 고용시장에서 이탈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경제 성장 잠재력을 훼손하는 악순환으로 빠져들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새사연은 같은 책에서 고용 국가책임 정책이 바로 “국민 노동을 육성하여 국제적 경쟁력을 확보하는 정책”이고 “국민경제의 성장 동력 관리 정책”이며 “풍요로운 국민생활 보장 정책”이라고 주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차원에서 “시장이 선(善)이 아니라 고용이 선(善)”이며, “고용을 배제한 성장이 아니라 고용을 통한 성장 전략”을 국가의 기본 경제발전 전략으로 정책 기조를 대전환해야 한다. 현재 강행하고 있는 노동 유연화 정책 기조를 즉시 폐기할 것을 명시적으로 말하고 ‘원점에서부터’ 다음의 과제들을 ‘포괄적 고용개혁’ 차원에서 검토해야 할 것이다.

1) 전 국민 고용보험제 도입: 현재 경제활동 인구의 절반도 안 되는 고용보험 외에는 고용안전망이 전혀 없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국민 건강보험에 준하는 ‘전국민 고용보험제’ 도입을 골간으로 하는 고용안전망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2) 고용영향 평가제 전격적 실시: 일정 금액 이상의 국책사업, 공기업의 신규투자, 대기업 구조조정, 외자유치, 대형 M&A 등에 대해서는 환경영향평가나 기술영향 평가에 준하는 고용영향평가를 사전적으로 실시하는 법적 장치를 도입하여 고용을 1순위 경제정책으로 펴는 것을 제도화해야 한다.

3) 공공부문의 정규직 고용 확대: 시장에서 사적 기업의 고용 흡수를 당장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국가가 공공 부문에서 선도적으로 ‘정규직 고용 확대 정책’을 선언하고 집행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고용개혁이 안착될 때까지 매년 일정 비율의 고용부문 정규직 채용을 체계적으로 늘려야 한다.

4) 고용기여에 따른 기업 법인세 차별 부과: 기업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책임은 고용이다. 사적 기업이라고 해서 시장 자율만을 주장하며 사회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국민을 대신해서 국가는 기업의 고용책임 분담을 명시적으로 요구하고, 고용 기여가 있으면 세제 혜택 등을 주고, 그 반대이면 ‘고용 분담세’를 과세하여 기여를 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5) 소득 감소 없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 확대 법제화: 기술혁신과 생산력 발전을 오직 기업의 수익으로 돌아가게 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노동시간 감소로 귀착시키는 방안을 국가가 제도적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정부가 나서서 시급기준 통상임금을 월급제로 전환하는 것을 추진해야 하는 등 소득 감소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유도해야 한다.

6) 동일가치 노동에 대한 임금 차별 원천금지 법제화: 비정규직 문제가 첨예한 것은 고용불안뿐 아니라 임금격차가 심각하다는 것이고, 이로 인해 광범한 근로빈곤층이 재생산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법적으로 동일가치 노동에 대한 임금 차별을 원천적으로 금지할 고용개혁을 해야 하며, 동시에 비정규직 사유제한을 엄격하게 해야 한다.

7) 고용 창출형 산업전략으로 전환과 공적 사회서비스 산업 육성: 녹색 산업도 의미가 있지만 당장 중요한 것은 고용 친화형 산업을 국가 산업 전략의 최우선 순위에 두는 것이다. 특히 공적인 사회서비스 산업의 고용창출 효과가 크다는 사실이 명확한 만큼 이 분야의 산업 육성방향으로 산업전략을 전환해야 한다.

8) 고용피해가 가장 큰 자영업 보호 발전 대책 실시: 최근 수년 동안 가장 큰 폭의 실직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분야는 자영업이다. 경제위기와 함께 대형 유통자본의 무분별한 SSM 진출로 연간 30~40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 고용차원에서 자영업 고용안전망 흡수, 대형 유통자본 확장에 대한 허가제, 자영업의 자활과 발전에 대한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

9) 시장 실패가 심각한 청년과 여성 고용에 대한 의무고용제 실시: 노동시장 실패 가운데 가장 심각하고, 시장 기제를 통해서는 도저히 해결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청년과 여성 고용 문제에 국가가 특별히 강도 높은 개입을 할 필요가 있다. 청년에 대한 고용할당제와 같은 의무적 고용규율을 적용해야 하며, 여성에게도 유사한 방식을 적용하여 시장실패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

10) 고용관련 일반 예산 대폭 확대: 정부의 4대강 사업, 대기업 감세로 인한 투자와 고용유도와 같은 정책들이 비용에 비해 고용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이 증명된 지금, 정부는 직접적으로 고용예산을 편성하여 투입해야 한다. 고용예산 가운데 90퍼센트 이상이 노동자와 기업이 적립한 기금인 현실에서 정부는 일반 회계 비중을 대폭 늘려서 고용 중심의 재정 운용을 해야 한다.

워낙 심각한 고용상황에 비추어 한두 가지만 손을 대서는 풍선 효과로 인해 실효를 거둘 수 없다. 문자 그대로 포괄적인 고용개혁이 필요하다. 정부는 이와 같은 과제들을 국가 전략 차원에서 준비하고 수행하기 위해 적어도 노동부는 물론이고 기획재정부, 교육과학기술부, 지식경제부, 중소기업청 등이 참여하는 국가 고용전략기획단을 구성하고 고용구조 틀을 근원적으로 바꾸기 위한 고용개혁을 시작해야 한다.

엄청난 비용과 국가적 노력이 지불되어야 하고 경제구조가 뒤바뀔 이 같은 사업이 가능할 것인가. 오히려 현재의 상태를 방치했을 때 예상되는 큰 사회적 비용과 경제 성장 잠재력의 훼손, 사회적 갈등에 들어갈 비용을 걱정해야 한다. 지난 10여 년 동안 비정규직 문제로 한국사회가 치룬 사회적 비용과 국민들이 감수한 고통의 크기를 감안할 때, 향후 예상되는 비용은 그것을 초월할 것이다. 악화될 고용불안으로 예견되는 사회적 비용을 감안하여 사전에 국가적 차원의 대책을 마련한다면 오히려 비용효과가 있을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10여 년 동안 지독한 고용불안과 비정규직 문제로 시달린데 이어 이번 금융위기로 다시금 큰 전환점에 서게 되었다. 단순한 고용불안을 넘어 ‘상시적 고실업 국가’로 갈 것인지, 아니면 구조적인 고용개혁을 착수해야 할 것인지의 분기점에 있다는 것이다.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7. 국민들은 고용책임을 국가에 요구할 권리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신자유주의가 전면화 되기 시작한 1997년 이후 이미 고용문제는 노동자 문제가 아니라 ‘국민적 의제’가 되었다. 새사연은 “고용을 국민의 최대 문제로, 최고의 복지를 고용으로, 반신자유주의의 시금석을 고용안정으로” 삼아야 할 이유에 대해 이렇게 지적해왔다.

“고용은 청년 실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300만 대학생의 문제고, 점포 유지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자영업인의 문제이며, 명예퇴직과 조기퇴직으로 노후 대비가 세워져 있지 않은 고령자 문제이기도 하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지금 여성 문제의 핵심에도 고용문제가 자리한다. 고용 안정과 고용 조건의 다양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고용 문제가 전 국민적 의제로 되어야 하고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핵심 의제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새사연,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 402쪽)

이번 경제위기로 새사연이 제기한 ‘고용의 국민적 의제화’ 주장은 당위가 아니라 가장 절박한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전 국민의 이해관계가 공통으로 걸려있고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권리를 주권자인 국민이 국가에 요구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지금 국가가 국민을 위해 해야 할 이보다 더 중요한 임무는 있을 수 없다.

남은 이야기> 쏟아지는 재테크 경제학, 속 빈 고용 경제학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유수의 기업 연구소들이 잘 해야 몇 개월에 1, 2편 정도의 고용 보고서를 내고 있을 때, 새사연은 그들 기업 연구소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고용 관련 보고서를 냈다. 2009년 11월까지 새사연이 직접적으로 고용 관련 이슈로 보고서를 낸 것만 해도 총 23편이 넘는다. 전체 보고서의 1/10 이상은 직접 고용을 주제로, 그 밖의 보고서들도 상당한 정도로는 고용과 연관된 주제였다. 그만큼 2009년 경제사회 의제 가운데 고용에 역점을 두었다는 것이다.(아래 고용관련 새사연 보고서 목록 참조)

적지 않은 진보적 식자나 연구소들도 4대강 사업이나 환경 문제 등을 비중 있게 진단하고 있는데 비해 고용문제의 심각성과 대안 모색은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조중동 신문사를 제외한 거의 모든 언론 매체들이 절대 부족한 고용진단 탓으로 새사연의 고용 분석을 자주 인용해왔다. 새사연 회원들과 독자들도 ‘생활인과 호흡하는 연구원’을 표방한 새사연이 지나치게 고용문제에 집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졌을 수 있다.

위에서 밝힌 것처럼, 이제 고용문제는 국민적 이슈이고 점점 더 국가적, 세계적 이슈로 확장되고 있기에 새사연이 보다 집중했음에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가장 ‘생활인다운’ 이슈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또 하나는 적지 않은 분들이 경제라고 하면 금융이나 투자, 재테크, 자산시장 등에 큰 비중을 두고 생각하고 있다. 이에 대해 복잡한 분석을 하는 것이 훌륭한 경제 분석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각종 경제 연구소들의 글이나 증권가에서 쏟아지는 자료들, 그리고 언론의 경제지면의 대부분이 이런 유형들이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고용 이슈란 그저 심각한 ‘일자리 부족’ 문제이지만 ‘뾰족한 대책이 별로 없다’는 식으로 넘어가는 것이 전부다.

지금도 유명 연구소들이 환율과 금리, 채권 등을 복잡하게 섞어가며 그럴듯한 경제전망을 하고 있지만 고용에 대해서는 ‘어둡다’는 짤막한 언급에 그치고 있다. 앞 다투어 내놓고 있는 2010년 경제 전망에서도 소수점까지 찍어서 성장률, 수출 증가율, 소비증가율, 환율, 금리, 유가 등의 전망치를 내놓고 있지만 정작 고용에 대해서는 획일적이고 근거 없는 실업률만 구색 갖추기 식으로 덧붙이고 있다.

새사연은 이처럼 의도적(?)으로 쏟아지는 자산투자 재테크 경제학과 알맹이 없는 고용 경제학 사이의 지독한 불균형을 깨고자 한다. 국민들에게 일할 일자리를 제대로 찾아주지 않는 경제논리는 경제논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2009년 한 해 동안 새사연은 총론적인 고용전략을 제시하기 보다는 <청년고용할당제>(2008년 12월), <전 국민 고용보험제>(2009년 2월), <고용 영향평가제>(2009년 6월)와 같은 몇 가지 구체적 사안에 집중해온 것이 사실이다. 워낙 긴급한 고용사정에 비추어 추상적인 담론 보다는 구체적이고 실효적인 세부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개의 세부 각론 대책만으로 고용에 대한 구조개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점점 더 확인되고 있다. 앞으로는 조금 더 총괄적인 수준에서 고용개혁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발상과 틀을 바꾸는 대안 의제를 제시하도록 노력하겠다.

새사연 2009년 고용 보고서 목록

2009.11.17 허술한 ‘자영업자 고용보험’, 전국민 건강보험에서 배워라
2009.11.03 믿었던 고용보험 ‘안녕’ 못하다
2009.10.23 고용보호의 사각지대는 얼마나 될까?
2009.10.15 올 겨울에는 직장 걱정 안 해도 되는가?
2009.09.22 현실성 떨어지는 고용 통계 어떻게 바꿔야 하나?
2009.09.16 ’상시적 고용불안’에서 ’실질적 고실업’ 사회로
2009.08.13 고용 없는 경기회복이 과연 가능한가?
2009.08.06 ’고용영향평가제’로 정부의 고용 없는 폭주 막아야
2009.06.30 [긴급제언] 고용 친화적 성장, ‘고용영향평가제’로 시작하자
2009.06.18 ’고용빙하기’의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진 대한민국
2009.05.11 노동유연화 가속? 극적인 고용정책 전환 절실
2009.04.13 고용-실업대란 시대, 전 국민 고용보험으로 개편해야
2009.04.10 고용보험 15년, 아직 갈 길 멀다
2009.04.01 노조가 관리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북유럽의 실업보험제도 겐트시스템
2009.03.27 실업은 국가의 책임, 호주 보고 배워야
2009.03.27 사각지대 큰 고용보험, 영국식 모델로 ’일보전진’
2009.03.23 한국의 고용안전망은 어디쯤 와있는가
2009.03.12 자영업인 ‘임의가입’ 허용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2009.02.19 한국은행의 정책 목표에 ’완전고용’을 추가해야
2009.02.17 고용대란 시대, ‘전국민 고용보험제’도입하자
2009.02.06 쌍용차 구조조정, 외국 경쟁차만 쌍수들 일
2009.01.29 작년 말 실질실업률 12%... ’고용의 역성장’이 시작되었다
2009.01.15 ’마이너스 10만 고용 시대’ 머지않았다
2009.01.14 ’녹색뉴딜사업’ 고용창출 효과의 허구성 
 

'세상보기 > Agenda' 카테고리의 다른 글

MB의 조급증과 3년차 증후군  (0) 2009.12.10
생활정치가 세상을 바꾼다  (0) 2009.12.03
새로운 사회를 상상한다.  (0) 2009.11.05
이제는 생활정치다  (0) 2009.10.31
"대안은, '호감의 결집'이다"  (0) 2009.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