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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기/조중동OUT

신영철과 조중동

신영철 사태가 묘하게 흘러간다. 분명 ‘상식’과 ‘몰상식’이 맞서고 있는데 상식이 잘 먹혀들지 않는 분위기다.
법원장이 보석을 신중하게 하라는 둥 재판에 개입했다면 사과로 끝낼 수는 없는 일이다. 재판권 침해가 명백한데 “평생 짊어지고 가겠다”는 말로 때우고 넘어갈 수도 없다. 전국의 대다수 법관들이 용퇴를 요구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고 상식적인 일이다.

그런데 ‘사법행정’이니 ‘여론으로부터의 독립’ 운운하는 궤변이 판치고 있으니 일이 순리와 상식대로 풀리지 않고 있다.

신 판사는 이제 보니 판사의 기본 자질인 ‘양심’은커녕 대한민국 평균 수준의 체면과 개념도 갖추지 못했다. 아스팔트 바닥에 착 달라붙은 젖은 낙엽도 아니고, 씹힐수록 맛이 나는 껌도 아닐 텐데, 하는 행태가 도를 넘었다. 그는 애초 보통 법관들과는 좀 달랐던 모양이다. 대법관 추천을 앞두고 기자들에게, 후보로 거명되던 다른 판사를 “○○○은 판사도 아니다”라고 폄하하는가 하면, 스스로를 ‘중부권 기수’로 불러 달라며 듣기 민망할 정도의 ‘언론 로비’도 마다지 않았다고 한다. 상식을 뛰어넘는 ‘자리집착증’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애초 징계도 하지 않을 윤리위원회에 사건을 떠넘겨 파행을 자초했다. 꼼수가 일을 그르쳤다. 해결책이라고 할 수도 없는 ‘자제 요청’ 글을 올린 법원행정처장의 행동도 어처구니가 없다. 그동안 여러 차례 사법파동이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법원 수뇌부가 함께 망가지는 모양으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왜 이런 일이 계속될까. 우선 대통령 탓이 크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는지 보고하라”고 참모들을 질책한 이래 여전히 심각한 촛불 알레르기 증세를 보이고 있다. 촛불 세력을 때려잡는 데 검찰·경찰을 비롯해 정부기관을 총동원한다. 그 서슬에 법원 고위층까지 주눅이 들었다. 대법관 삼수 중이던 신영철 판사는 이런 뜻을 받들어 과감하게 촛불 재판에 몸을 던진 것뿐이다. 그러니 이용훈 대법원장인들 그를 내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지율 20%대에 불과한 대통령 바짓가랑이만 붙잡아서는 신 판사인들 이렇게까지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동료들한테까지 왕따 신세인 그를 수개월째 지켜주고 있는 더 큰 버팀목은 보수언론이다.

조·중·동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상식과는 동떨어진 논조를 선보이고 있다. 특히 <조선일보>는 견강부회·아전인수·왜곡보도의 결정판을 보여줬다. 처음 법원장 신영철이 판사들에게 압력성 이메일을 보낸 사실이 드러나자 “법원 내부 일을 외부에 폭로하는 것은 사법부를 향한 파괴공작”(3월7일)이라거나 “법원이 좌우, 세대 갈등으로 찢겨 있다”(3월17일)며 본말 뒤집기를 시도했다. 윤리위의 솜방망이 징계 이후 판사들이 대책회의를 열겠다고 하자 “사법부는 여론 압력에서도 독립해야 한다”(5월14일)고 ‘압력’을 넣더니, 회의를 열자 “선을 넘어선 안 된다”(5월15일)며 판사들을 석·박사 과정 학생에 비유하는 과도한 상상력까지 선보였다.

보수언론들은 판사회의가 사실상 신 판사의 사퇴를 권유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는데도 일제히 ‘사퇴 요구는 없었다’고 제목을 뽑는 이심전심의 동지애를 보여줬다. 판사들의 반발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와중에도 끝내 1면에 신영철이란 이름을 등장시키지 않고 독자들의 시선을 돌리려 무척이나 애써 주었다. 그러니 신 판사인들 딴생각을 품을 수 있었겠는가.

아마도 신영철이란 이름이 이들 신문 1면에 등장하지 않는 한 신 판사는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중·동에도 상식 있는 기자들이 많이 있다. 조만간 1면에서 기사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이택 수석부국장 rikim@hani.co.kr
2009-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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