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칼럼은 친일임명사전 발간에 색깔론등 부처별적인 시비를 걸고 있는 조선, 동아일보의 정체성에 대한 한겨레신문(2009-11-12) 김종철 정치부문편집장의 글이다.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대부분의 프랑스 언론은 독일과 괴뢰정권인 비시 정부에 협력했다. 히틀러를 찬양하는 한편 레지스탕스 운동을 테러행위라고 매도했다. 나치 치하에서 ‘어쩔 수 없었던’ 측면도 있었겠지만, 해방된 프랑스는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차원에서 언론의 반민족 행위를 단호하게 처벌했다.
샤를 드골이 이끄는 임시정부는 1944년 훈령을 내려 “나치 점령군과 비시 정권의 지시와 규정에 순종”했던 언론사는 모두 발행을 금지시켰다. 대신 <리베라시옹>과 <콩바> 등 지하신문이 부역 신문사의 시설을 통째로 접수했다. 곡필아세했던 친나치 언론인에 대한 숙청도 철저했다.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에 대해 “우리의 땅을 수호하고 있는 것은 독일인”이라고 아부했던 일간 <오주르뒤>의 편집인 조르주 쉬아레즈, 신문협회 회장으로 부역에 앞장섰던 일간 <누보 탕>의 발행인 장 뤼셰르 등은 총살됐다. 간신히 처벌을 면한 반민족적 언론인은 모두 언론계에서 쫓겨났다.
8년여의 산고 끝에 나온 <친일인명사전>에 대해 ‘민족지’를 자처해온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두 신문은 친일인명사전이 ‘대한민국 정통성을 갉아먹고, 훼손했다’고 헐뜯는다. “식민지 지배가 끝나고 60여 년이 흐른 지금, 복합적 삶의 단편적 내용만 골라 친일의 낙인을 찍는 것은 결정적인 오류를 범할 수 있다”(동아)는 둥 ‘해방 직후 반민특위의 친일인사(688명)와 광복회의 2002년 친일인사 명단(692명)에 비해 인명사전의 인원(4389명)은 6배나 늘었다’(조선)는 둥 온갖 트집을 잡는다. 사전을 펴낸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의 과거 독재정권 때 투옥 전력을 들어 색깔론까지 꺼냈다.
어느 나라에서건 보통 보수주의는 민족적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 반민족 행위자를 공개하고 단죄하는 것을 국가 정체성 훼손이라고 비난하는 자칭 보수주의자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그 이면에는 한국 보수주의자의 부끄럽고 뒤틀린 과거가 숨어 있다.
방응모가 1933년 조선일보를 인수한 몇년 뒤부터 이 신문에는 일왕 부부의 사진이 매해 1월1일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리는 등 친일적인 기사가 넘쳐났다. 또 37년 중일전쟁 뒤에는 국방헌금을 독려하는 캠페인도 펼쳐졌다. 여기에 방응모는 고사기관총을 사라며 일제에 1600원을 헌납했으며, 수차례 시국강연에도 나섰다. 동아일보도 막판에는 조선과 다를 바 없었다. 일제가 이 땅의 젊은이들을 침략전쟁에 내몰기 위해 만든 ‘육군 특별지원병 제도’를 찬양하는 등 침략자의 편에 섰다. 동아일보 사주였던 인촌 김성수도 국방헌금 1000원을 헌납했으며, 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 징병 격려문도 썼다.
보수적인 <르 피가로>는 프랑스 해방 이후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았으며, 지금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당시 브리송 사장이 지하 저항 운동에 가담했던 공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조선·동아의 사주들은 브리송 사장 같은 애국 활동을 한 적이 없었던 만큼 프랑스였다면 두 신문은 당연히 오늘날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청산되지 못한 과거를 행운으로 여길 건가. 독재 정권에서 신문사 세력을 키운 것도 능력이라고 자랑할 건가. 그래서는 우리 사회에 희망이 없다. 미래를 지향하겠다면 할아버지대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 자신에게 월급받는 ‘충성스런’ 신문쟁이들이 헛된 논리로 욕된 ‘과거’를 미화하는 곡필부터 막아야 한다. 이들 뒤에 숨어 웃고 있다면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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