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박해 이겨내고 민주화 이뤘듯 '인동초'처럼 우리 품에 돌아오시길
글쓴이 : 김갑수(소설가, 정치사회비평가, 기자 : 글쓴이 소개 아래 참조)
'인동초'(忍冬草)는 이름처럼 겨울을 이겨내는 꽃이다. 이 풀은 엄동설한에도 잎과 줄기가 얼어 죽지 않고 견디다가 이듬해 여름이 되면 화사한 꽃을 피운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에게 인동초라는 별호가 붙은 것은 거의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혹독한 겨울을 여러 차례나 겪었지만 그때마다 마치 인동초처럼 살아나 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겨울을 너끈히 견딘다는 인동초도 여름 병마(病魔)에는 무력한 것일까? 이제 낼모레면 말복이다. 7월 13일에 중환자실에 실려 간 DJ는 근 한 달째 삼복염천의 병마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 뜨거운 여름날, 그의 수족이 차갑다고 한다. 그래서 부인이 뜨개질로 벙어리 장갑을 짜서 감쌌다는 애처로운 소식이 들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대하고 "내 몸의 반이 무너져 내린 느낌이다"고 했던 그의 말이 정녕 사실이었나 보다. 85세 고령의 노인이 반 남은 몸으로 이겨내기에는 하늘이 너무 뜨겁고 대기가 심상치 않게 어수선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0일 병문안을 간 자리에서 의료진에게 "기적도 있다. 최선을 다해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병문안을 탓하고 싶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 말이 야속하게 들린다. 그의 말대로라면 DJ의 소생은 이제 '기적'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혹여 그가 뭔가 결정적인 소식을 듣고 한 말일는지 몰라 불안해진다. 사태가 비상한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한나라당 당직자들이 급거 병문안을 간 것을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역시 병문안 자체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참칭(僭稱)했던 사람들 아닌가.
김대중의 상실은 우리 민족의 크나큰 불행
60여 년 전 해방정국의 여름, 우리는 두 지도자를 잃었다. 몽양 여운형이 암살된 것은 1947년 여름이었고 이어 백범 김구는 1949년 여름에 암살되었다. 몽양과 백범은 둘 다 남북 합작을 위해 노력한 지도자로서 각각 극우 인물 한지근, 안두희의 만행으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두 사람의 상실로 우리 민족이 입은 손실을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두 인물을 잃은 우리는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을 겪었으며 남북 분단 체제는 더욱 고착되었다. 물론 몽양이나 백범만한 민족 전향적인 인물은 반세기 동안 나오지 않았다. 이후 등장한 죽산 조봉암 역시 이승만 정권의 사법 살인에 희생되고 말았다. 이처럼 대북포용과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인사들이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현실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수치와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반세기 만에 우리는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민족 전향적인 지도자를 만났다. 하지만 올 들어 공교롭게도 남북정상회담을 했던 두 지도자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급서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금 생사의 기로에 직면해 있다.
노 전 대통령에 이어 김 전 대통령마저 세상을 뜬다면 민족 문제를 풀기는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카터나 클린턴의 특사 방문에서 보았듯이 김정일 위원장과 친분이 있는 노무현·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은 대북특사로서 적임자였다. 무엇보다도 두 사람의 부재는 남북문제에 위급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유력한 인적 수단을 상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화 투쟁의 제1인자 김대중
식민지와 군부독재의 역사가 우리의 부끄러운 기억이라면 이와 반대급부로 우리에게는 두 가지의 자랑스러운 역사도 있다. 하나는 제국주의에 줄기차게 저항한 독립투쟁의 역사이고 다른 하나는 군부독재에 치열하게 맞서 싸운 민주화투쟁의 역사이다.
대한민국에서 김구가 독립 투쟁의 상징적 인물이라면 김대중은 민주화 투쟁의 제1인자로서 확고한 위치를 갖는다. 따라서 그는 최소한 우리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겨야 할 두 인물 중 하나가 된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김대중은 박정희 시절 함석헌, 장준하 등이 타계한 1970년대 초반 들어 민주화를 상징하는 '재야인사'(한때 언론에서는 그를 이렇게밖에 호칭하지 못했다.)로 우뚝 선 이래 전두환 시절까지 가멸차게 투쟁을 주도했다.
물론 김영삼의 민주화 투쟁도 눈부신 바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김대중만큼 박해를 받지는 않았다. 김대중이 체험한 투옥과 고문, 교통 테러로 인한 신체장애, 생사를 넘나든 납치, 그리고 사형 언도 등의 목록 중에 김영삼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박정희나 전두환이 두려워한 인물은 김영삼이 아니라 단연 김대중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평가대로 어느 날인가 김영삼은 군부독재의 후계자인 노태우와 합작해 버렸다.
물론 김대중도 5·16 쿠데타 세력인 김종필과 연대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정권교체를 관철하기 위한 방책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오히려 이런 점에서 김대중은 김구보다 우월하다는 관점이 성립될 수 있다. 김구는 순수하고 비타협적이었다. 그리고 김구의 이런 점을 미군정과 이승만이 이용한 측면도 있다. 김대중은 김구와 다르다. 그는 '타협하되 일관한다'는 신조를 지녔던 베트남 통일의 주역 호치민 유형의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971년 DJ가 내놓은 4대국 보장론이나 통일정책은 아주 파격적입니다. 우리는 DJ를 최근의 정치인으로 보지만 그가 정치권에 등장해서 1970년에 대선후보가 되어 1971년 대선 때 제시했던 정책방향을 그 시대 속에서 보면 아주 천재적인 것들입니다. 그가 당시의 세계정세를 나름대로 읽고 내놓은 외교 통일정책들을 보면 그가 매우 뛰어난 안목을 가진 정치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오연호 저,'노무현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이처럼 인물은 인물을 알아보는 법이다. 반면에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는 말도 있다. DJ가 노벨상을 타게 되었을 때 로비설을 제기하고 그에게 상을 줘서는 안 된다는 편지를 수천 통씩이나 노벨상위원회에 부친 한국인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아직도 DJ를 빨갱이라고 하는 '모자라는 사람'도 적지 않다. 아마도 그들은 몽양이나 백범을 암살한 한지근이나 안두희 따위의 후예가 아닐까 한다.
"그 음악은 제발 틀지 마세요, 디제이"
우리 민주주의가 어떻게 만든 민주주의냐? 독재정권, 보수정권 50여 년 끝에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10년 동안 이제 좀 민주주의를 해보려고 했는데 어느 새 되돌아가고 있다. 목숨 바쳐온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으니 억울하고 분하다. 행동하는 양심, 각성하는 시민이 되어야 민주주의를 살려낼 수 있다.(디제이가 노 전 대통령의 추도사를 대신하여 한 말 중에서)
이처럼 그가 입원하기 며칠 전까지도 강조한 것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였다. 그는 민주화투쟁의 제1인자답게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끝까지 추구하다가 병마를 맞이한 것이다. 그는 민주주의를 해야 남북문제도 풀리고 경제발전도 이룩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전 청와대 비서실장 박지원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큰 실망을 하셨다.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주주의의 유신· 5공시대로의 회귀, 서민경제의 몰락, 남북문제의 붕괴 등에 대해 큰 걱정을 하셨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의 위독 상황은 이명박 정부에 일단의 책임이 있으며 거슬러 올라가 이명박 정부를 집권하도록 만들었거나 방기한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DJ는 그를 데려가려는 병마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고령으로 신장투석까지 받고 있는 상황에다 폐렴이 겹쳤으니 아무도 그의 회복을 장담할 수 없다. 긴급히 가족회의를 열었다는 말도 있고 심지어는 장례 절차를 논의한다는 소문까지 들린다.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다가 자살로 삶을 마감한 지 불과 석 달도 되지 않았는데 DJ마저 유명을 달리한다면 이보다 더 큰 나라의 우환은 없을 터이다.
DJ는 소생할 수 없다는 건가. 이제 우리는 그의 육성을 다시 들을 수 없다는 것인가. DJ 특유의 그 '천진한 미소'를 우리가 다시 볼 수 없다는 말인가. 미소가 아니더라도 노 전 대통령 장례식장에서 권양숙씨의 손을 잡고 '우왕'하고 입을 벌리고 울던 모습마저 새삼 그리워진다. 겨울에 강한 인동초에게 낼 모레가 말복이라는 소식을 전하고 싶다. 하여 이 뜨겁고 어수선한 여름도 다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일깨웠으면 한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모든 장기의 기능이 서서히 약화되어 가고 있는 DJ를 생각하다 보니 여름 하늘이 불현듯 어두워진다. 옛날 어느 가수가 부른 노래에 '그 음악은 제발 틀지 마세요, DJ'라는 가사가 있었다. 노랫말처럼 DJ여, 아무리 힘겹더라도 이 여름 우리에게 제발 이별의 음악만은 틀어 주지 마시기를.
김갑수(kim gabsoo)
소설과 정치`사회비평을 주로 씀. <한국문학> 소설신인상에 <그 눈빛> 당선으로 등단. 동국대 국문학과 졸업,같은 대학원 석`박사과정에서 현대소설 전공. 대학에서 <현대소설론> <소설창작론> 등 강의. 소설창작집 <그 눈빛> 장편소설 <오백년 동안의 표류> 논술이론서 <논술의 수사학> 등 발간. 오마이뉴스에 역사팩션 <제국과 인간>(장편3부작) 전쟁과 사람(장편) 연재. 2008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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